카테고리 없음

그 머나먼 - 진은영

물빛향기 2020. 5. 24. 20:10

140)  그 머나먼             - 진은영

 

홍대 앞보다 마레 지구가 좋았다

내 동생 희영이보다 앨리스가 좋았다

철수보다 폴이 좋았다

국어사전보다 세계대백과가 좋다

아가씨들의 향수보다 당나라 벼루에 갈린 먹 냄새가 좋다

과학자의 천왕성보다 시인들의 달이 좋다

 

멀리 있으니까 여기에서

 

김 뿌린 센베이 과자보다 노란 마카롱이 좋았다

더 멀리 있으니까

가족에게서, 어린 날 저녁 매질에서

 

엘뤼아르보다 박노해가 좋았다

더 멀리 있으니까

나의 상처들에서

 

연필보다 망치가 좋다, 지우개보다 십자나사못

성경보다 불경이 좋다

소녀들이 노인보다 좋다

더 멀리 있으니까

 

나의 책상에서

분노에게서

나에게서

 

너의 노래가 좋았다

멀리 있으니까

 

기쁨에서, 침묵에서, 노래에게서

 

혁명이 철학이 좋았다

멀리 있으니까

 

집에서, 깃털 구름에게서, 심장 속 검은 돌에게서

 

    - 시집<훔쳐가는 노래>(창비, 2012)

===

좋아하는 것

 

우중충한 것 보다 화사한 것이 좋다.

연필보다는 볼펜이 좋다.

볼펜 잉크 냄새보다 아가씨들의 향수가 좋다.

김뿌린 센베이 과자보다는 옥수수 뻥튀기가 좋다.

나는 책상에서 책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더 행복하고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