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 904

너의 작은 목소리

너의 작은 목소리​작은 손에 꼭 쥔하얀 종이컵 두 개파란 끈 하나가세상을 이어 주었지​“여보세요?”그 말 한마디에네 웃음이 방울방울 튀어 올라내 마음에도 파문을 그렸단다​네 목소리는할아버지의 귀에 닿기도 전에가슴부터 따뜻하게 물들었고내 마음 한구석, 오래된 상처마저말랑말랑해졌지​너는 지금종이컵 전화기로 노는 중이지만나는 그걸로너와 나 사이보이지 않는 시간을 들었단다​엄마의 어린 시절도그 종이컵 속에 잠들어 있었고내 젊은 날의 사랑도어느 틈에 실려왔단다​바닥에 앉아너는 해맑게 소리쳤고나는 사진 속 너를 보며세상에서 가장 긴 통화를 했지​줄 하나로 연결된 마음컵 하나로 이어진 세월너는 몰라도 괜찮아그저 지금처럼 웃어줘​너의 작은 목소리는세상 어떤 음악보다 아름답고너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은나의 노래가 된단다​..

지평선 스미다

"지평선에 스미다"지평선에 스미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 위로 하늘과 땅이 맞닿은 지평선이 흐르고 너는 그 끝에 서 있었다. 나는 기억해 너와 내가 하나 되던 그 아픈 순간을. 저녁은 붉게 타올라 우리의 그림자를 삼켰고 핏물처럼 스며든 노을 속에서 너는 천천히 하늘의 일부가 되어갔다. 지워지지 않는 빛이 그 사이를 채우고 나는 오늘도 너의 그리움에 젖은 들판을 걷는다. "노을에 젖은 들판, 그리움이 머문다"

작은 손, 푸른 잎

작은 손, 푸른 잎작은 손 하나,물뿌리개를 꼭 쥐고햇살 머문 잎 위로조심스레 물을 흘립니다.​토닥, 토닥서툰 손끝이 전하는 인사푸릇한 상추는아이의 사랑을 먹고 자랍니다.​“할비~ 사추 내가 키웠어요!”조금은 어눌한 말투,그 안에 담긴 세상의 전부.나는 웃으며 말합니다.“그랬구나, 정말 잘했어요.”​씻긴 상추 몇 장이식탁 위에 오릅니다.흙냄새, 햇살, 기다림그리고 손녀의 웃음까지그 속엔 모든 계절이 담겨 있습니다.​바쁜 세상,빨리 자라는 것들 틈에서이 아이는 느리게,하지만 깊이 자라고 있었습니다.​오늘, 나는 다짐합니다.이 작은 손이 키운 푸름처럼늘 따뜻하고진심으로 무언가를 돌보는 사람이 되기를. "한 줌의 상추, 마음 한가득의 사랑"

반죽 안경 속에서 웃는 아이

반죽 안경 속에서 웃는 아이 – 외할아버지의 마음으로 "노란 반죽 안경 너머, 웃는 세상이 있었습니다" 카톡 알림 하나딸이 보낸 사진을 열자작은 얼굴 하나가노란 반죽 안경을 쓰고 나를 바라본다 코에 얹힌 반죽,두 눈 주위로 삐뚤삐뚤 둥글게 감겨환한 미소를 지은 채그 아이는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밀가루일까, 단호박일까알 수 없는 재료로 만든 그 반죽냄새도 질감도 나는 모른다하지만 웃음만큼은 확실했다 "어른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곳을, 아이는 알고 있었다" 손바닥만 한 세상 속에서아이의 손은 무엇이든 빚어냈다안경도, 왕관도,마음속 이야기들도 나는 그 안경 너머로아이가 보고 있는 세상을 상상했다틀 없는 세상,정해진 답이 없는 놀이의 나라 어른이 된 나는이미 ..

그 길에 머문 하루

그 길에 머문 하루"고요한 길 위, 내 마음이 머문 자리" 오늘도 아무 준비 없이가방 하나 메고버스에 몸을 실었다햇살이 정릉을 향해등을 다정히 밀어주었다 명상길 계단을 오르니뻐꾸기 소리, 바람의 숨결이름 모를 새들이고요한 숲에 살며시 리듬을 더한다 나무 그림자 아래잠시 멈춰 선 마음그늘보다 더 시원했던 건자연이 내어주는 다정한 온기였다 평창마을길 아스팔트 위햇살에 천천히 익어가는 얼굴담벼락 너머담쟁이와 꽃들이 조용히 인사한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7구간 앞에 이르러하루를 고요히 내려놓았다그리고 속으로 속삭였다"잘 걸었다, 잘 지나왔다" "숲이 말을 걸고, 나는 귀를 기울였다" ♣ 2025년 5월 27일 북한산 둘레길 5구간 명상길과 6구간 평창마을길을 다녀와서 쓴 시.

커피 한잔의 여유

커피 한잔의 여유 – 위로의 잔을 당신께 –그리움과 찻잔천천히 내려온 시간 속,향기처럼 머무는 기억. 손끝에 떨어지는따뜻한 물방울 몇 줄기,고요한 아침에조용히 피어오르는 커피 향. 젊은 날은쏜살같이 흘러갔고,바쁘게만 걷던 시간들은차곡차곡 쌓여지금의 나를 만들었지요. 이제는,천천히 내리는 커피처럼조금 느려도 괜찮다고내 마음도 말해줍니다. 쓴맛도, 단맛도모두 익숙한 이 시절,디카페인을 마시면서도어느 날은믹스커피 한 잔에 눈물이 핑. 그건향기보다 기억,맛보다 그리움. 커피는혼자 마셔도 좋고,누군가와 나누면더 따뜻해지니까요. 말없이 내밀던그 사람의 커피잔,"오늘은 좀 어땠어요?""힘들었죠?"그 말 대신,조용히 건네는 위로였습니다. 이제는 묻고 싶어요.당신의 커피는 어떤 맛인가..

물안개 피어 오르던 아침

물안개 피어오르던 아침 《사진의 시를 수정했습니다》 전날 내린 비에젖은 자전거길을 따라나는 이른 아침 금강을 달렸네 해는 아직 떠오르지 않았지만하늘은 맑았고공기는 조용히 숨을 쉬었다 강 위에는흰 숨결처럼물안개가 피어올랐다천천히, 아주 천천히산허리를 감싸며 번져나갔다 나는 그 안으로 들어섰다길인지, 강인지,현실인지, 꿈인지분간할 수 없던 그 순간 페달을 밟는 내 다리 아래로세월이 흐르고 있었고내 마음은 그 안개처럼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이루지 못한 것들,지나간 날들의 조각들이물안개 되어내 앞을 가로막았다가이내 스며들어따스하게 사라졌다 잡을 수 없는 것을붙잡으려 하지 않고스쳐가는 아름다움을그저 마음에 담는 아침 나는 그날물안개 속에서또 다른 나를 만났다 조용히 사라지는 안개처럼삶도, 사랑도잠시 머물다 간다..

바다를 만난 나비

바다를 만난 나비 - 물빛향기봄빛이 고요한 어느 날,흰 나비 하나,푸른 들판인 줄 알고바다를 향해 날았다.바다가 있다는 건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그래서 그 푸른 빛이꽃밭 같아 보였다.바다는 말없이나비의 날개를 적셨고나비는 천천히 무너졌다. 젖은 날개를 접고지친 숨으로 돌아온 나비는그제야 세상의 깊이를 배운다.꽃은 피지 않는 바다,하지만 그 바다에 젖은 기억은나비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이제 나비는들판을 모르는 채로다시, 바다를 향해 날아간다.넘어져도, 젖어도,나비는 알고 있다.비상은꽃에서가 아니라,바다에서 시작된다는 걸.

짜장면 먹는 너를 보며

짜장면을 먹는 너를 보며 ㅡ 손녀에게 ㅡ작은 입 가득 짜장면을 물고입가에 묻은 검은 웃음을 짓는 너,나는 그 모습을 눈에 담고마음 깊은 곳에 간직한다.젓가락질이 서툴러도스스로 먹겠다며 고개를 들고의젓하게 한 입, 또 한 입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이라며 웃는 너.그 웃음 하나에내 지난 세월이 다 녹고너의 오늘이, 내 기쁨이 된다.나는 그저 바라볼 뿐인데너는 나를 웃게 한다.나는 그저 찍을 뿐인데너는 나를 시 쓰게 한다.할아버지의 사랑은뜨거운 국물도, 달콤한 짜장도다 녹일 만큼묵묵하고 깊다.오늘 너를 찍은 이 영상 하나에내 삶의 봄이 담겼다.그리고 너라는 꽃이한 그릇 짜장 속에 피어 있다.

아내의 밥상

아내의 밥상 ㅡ 물빛향기아침은 가볍게 넘기고점심은 식당에서 때운다그리고 저녁은 늘 집에서하루를 마치고 돌아오면아내는 말없이따뜻한 밥상을 차린다 그저 익숙한 일처럼조용히 내 앞에 내놓인다나는 말없이 숟가락을 든다피곤한 하루였지만밥상 앞에 앉는 순간몸도, 마음도 풀린다 “응, 잘 먹었어”짧은 한마디로 대신하지만그 밥상 위엔고마움이, 정성이,사랑이 가득하다말로는 다 전하지 못할 마음서툰 표현 대신밥 한 숟갈, 또 한 숟갈에조심스레 담아본다오늘도 집으로 돌아오면아내는 조용히 식탁을 차린다 그 무언의 손길 안에그 깊고 잔잔한 사랑이은은히, 내 마음을 데운다날마다 받는 이 밥상 위에나는 아내의 사랑을 먹는다그리고 오늘도 그 사랑으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