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물들어가는 인생(자작) 39

바다를 만난 나비

바다를 만난 나비 - 물빛향기봄빛이 고요한 어느 날,흰 나비 하나,푸른 들판인 줄 알고바다를 향해 날았다.바다가 있다는 건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그래서 그 푸른 빛이꽃밭 같아 보였다.바다는 말없이나비의 날개를 적셨고나비는 천천히 무너졌다. 젖은 날개를 접고지친 숨으로 돌아온 나비는그제야 세상의 깊이를 배운다.꽃은 피지 않는 바다,하지만 그 바다에 젖은 기억은나비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이제 나비는들판을 모르는 채로다시, 바다를 향해 날아간다.넘어져도, 젖어도,나비는 알고 있다.비상은꽃에서가 아니라,바다에서 시작된다는 걸.

짜장면 먹는 너를 보며

짜장면을 먹는 너를 보며 ㅡ 손녀에게 ㅡ작은 입 가득 짜장면을 물고입가에 묻은 검은 웃음을 짓는 너,나는 그 모습을 눈에 담고마음 깊은 곳에 간직한다.젓가락질이 서툴러도스스로 먹겠다며 고개를 들고의젓하게 한 입, 또 한 입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이라며 웃는 너.그 웃음 하나에내 지난 세월이 다 녹고너의 오늘이, 내 기쁨이 된다.나는 그저 바라볼 뿐인데너는 나를 웃게 한다.나는 그저 찍을 뿐인데너는 나를 시 쓰게 한다.할아버지의 사랑은뜨거운 국물도, 달콤한 짜장도다 녹일 만큼묵묵하고 깊다.오늘 너를 찍은 이 영상 하나에내 삶의 봄이 담겼다.그리고 너라는 꽃이한 그릇 짜장 속에 피어 있다.

아내의 밥상

아내의 밥상 ㅡ 물빛향기아침은 가볍게 넘기고점심은 식당에서 때운다그리고 저녁은 늘 집에서하루를 마치고 돌아오면아내는 말없이따뜻한 밥상을 차린다 그저 익숙한 일처럼조용히 내 앞에 내놓인다나는 말없이 숟가락을 든다피곤한 하루였지만밥상 앞에 앉는 순간몸도, 마음도 풀린다 “응, 잘 먹었어”짧은 한마디로 대신하지만그 밥상 위엔고마움이, 정성이,사랑이 가득하다말로는 다 전하지 못할 마음서툰 표현 대신밥 한 숟갈, 또 한 숟갈에조심스레 담아본다오늘도 집으로 돌아오면아내는 조용히 식탁을 차린다 그 무언의 손길 안에그 깊고 잔잔한 사랑이은은히, 내 마음을 데운다날마다 받는 이 밥상 위에나는 아내의 사랑을 먹는다그리고 오늘도 그 사랑으로 살아간다

나무를 보면 ㅡ 물빛향기

나무를 보면 ㅡ 물빛향기 높게 솟아오르려는 나무는성장하는 것을 잠시 멈추고서자신의 내면을 살핀다. 여름에무덥고 뜨거워지는 날,나무들도 서늘해지려고 한다. 햇볕이 건들려도 꿈쩍하지 않고,바람이 찾아와서다른 곳으로 놀러가자고 해도꿈쩍도 않는다. 나무는가지를 뻗고, 많은 잎을 달고생명의 본분을 다하는 것처럼, 사람도 자기의 본분을다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 - - - -* 전도서 12장 13절 / 안도현시인의 글을 읽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