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2

무말랭이 - 안도현

45) 무말랭이 - 안도현 외할머니가 살점을 납작납작하게 썰어 말리고 있다. 내 입에 넣어 씹어먹기 좋을 만큼 가지런해서 가을볕이 살점 위에 감미료를 편편(片片)뿌리고 있다 몸에 남은 물기를 꼭 짜버리고 이레 만에 외할머니는 꼬들꼬들해졌다 그해 가을 나는 외갓집 고방에서 귀뚜라미가 되어 글썽글썽 울었다 - 시집(창비, 2008) === 가을 무를 밭에서 뽑아서, 쓱쓱 깎아서 먹어 보기도하고, 저장하기도 하고, 김장할 때 속으로 사용하기 위해, 채를 썰기도 하고, 무성채를 만들기도 하고, 깍두기 김치도 만들고, 무를 썰어 햇빛에 말려서 무말랭이를 만드는 어머니를 도와 드렸던 기억이 나네요. 또한 이제는 아버지, 어머니가 한해가 다르게 말라가는 모습이 딱, 이 시와 비슷하네요. 안타깝고 애처로워, 가는 세월..

간격 - 안도현

14) 간격 - 안도현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 데 붙으면 도저히 안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하는, 나무와 나무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울창창(鬱鬱蒼蒼)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보고서야 알았다 - 시집 (창비, 2004) === 나무와 나무사이에 바람과 해가 들 수 있는 간격 있듯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도 간격이 있어야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간격이 있기에 나무 가지와 잎사귀가 옆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것처럼,,, 간격이 있으므로 해서 나무 아래 있는 풀과 꽃들이 살아 갈수 있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