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성(北漢山城 / Bukhansaneong)
지정번호 : 사적 162호 시대 : 1711년(숙종 37년)
소재지 : 서울 종로구,은평구, 성북구, 강북구, 고양시 일원
이 산성은 1711년(숙종 37년)에 북한산에 쌓은 것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격은 뒤 유사시에 대비해 한양 외곽에
성을 쌓자는 논의가 대두되면서 만들어진 산성이다.
당시 완성한 성곽의 길이는 7,620보(步)(12.7km), 즉 21리 60보이며,
지형에 따라 적절하게 축성방식을 달리하여 성벽을 쌓았다.
성곽시설로는 군사 지위소인 장대(將臺)를 세 곳(동장대, 남장대, 북장대)에 만들었고,
성문 6개소(북문, 대동문, 보국문, 대성문, 대남문, 대서문),
암문(暗門) 6개소, 수문 1개소를 두었다.
성을 쌓는 것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문제로 삼았던 식수 문제는 99개소의 우물을 파서 해결했다.
저수지도 26개나 만들고, 8개소의 창고를 두었다.
성 안에는 승군(僧軍)을 주둔시키기 위한 사찰을 여러 곳에 두었는데,
승군 총섭이 머물던 중흥사는 규모가 136칸에 달했다.
1712년(숙종 38년)에는 상원봉 아래에 130칸 규모의 행궁과 140칸에 이르는 군창(軍倉)을 지었다.
근래 훼손되었던 대서문, 대남문을 보수하였고,
대성문, 대동문, 보국문, 동장대 등은 다시 지었으며,
성곽과 여장 등도 보수, 정비하였다.
북한산 능선을 따라 쌓은 석축 산성으로, 백제가 위례성에 도읍을 정할 때,
고구려의 남진을 막기 위해 개루왕 때(132년) 처음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후 신라가 백제와의 동맹을 어기고 한강지역을 차지하면서 진흥왕이 북한산 순수비를 세웠다.
고려 고종 19년(1232) 몽고군의 2차 침입시 이 산성에서 전투를 벌였던 사실과
거란의 침입시 고려 현종이 태조의 위패를 이곳으로 옮긴 일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이전에도 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산성에 대한 대대적인 수축 및 증축이 이루어진 것은
조선 숙종 37년(1711)이며, 지금 남아 있는 성벽은 그때의 것이다.
북한산성은 조선조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을 겪으면서 도성의 방어대책으로 여러번 축성론이 거론되다가
제 19대 숙종 37년(1711년) 4월 3일에 착공하여, 그 해 10월 19일에 완공을 보게 되었다.
산성의 둘레는 9.7km가량되고 이 중 성채만의 총 연장은 8.4km에 이르며
성벽의 곳곳에 외부로 연결되는 문이 설치되어 있다.
북한산성의 성문은 북문, 대동문, 대서문, 중성문, 대남문, 대성문, 보국문,
암문은 서암문(시구문), 백운동암문(위문), 용암동암문(용암문), 청수동암문, 부왕동암문, 가사당암문
수문은 현재, 수해로 소실됨.
장대는 동장대(시단봉), 남장대(나한봉 동북동), 북장대(중성문 서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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