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등산 여행/걷 기 얘기

음석

물빛향기 2012. 10. 7. 18:29

난향로원(蘭香路苑)의 유래(由來)

 

   고려시대 말기 무렵에 朴氏성을 가진 "난향"이라는 어린 새색시가 이 지역 어느 집안으로 시집을 오게되었다.  시집와서 처음으로 냇가에 빨래를 하러 나갔다가 강물에 떠내려오는 고리바구니를 보고 호기심에 건져 보았더니 그속에는 무녀(巫女)가 쓰는 비단옷, 방울, 부채등의 물건이 들어 있었다.  어린 새색시는 신기한 마음과 알지못할 기운에 서려 그 물건을 들고 온동네에 자랑을 하고 다녔으며, 이 소문을 들은 시아버지는 사대부 가문에 출가한 여자가 해괴한 행동을 한다하여 심히 꾸짖었고, 그 일로 어린 새색시는 이곳에 있던 소나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그후 무녀의 원혼이 서린 원귀가 되어 시댁집안 식구들을 괴롭히고, 대(代)가 끊이는 등의 후환을 낳게 하였다.  이러한 일로 인해 시댁가문에서 새며느리를 맞아드릴 때 비단옷 한벌을 제물로 놓고 원혼을 달램으로써 후환을 면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이산의 이름을 "난향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또한, 이곳에서  온 마을 사람들이 매년 단오날이면 떡과 음식을 준비하여 마을의 안녕과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제(祭)를 지내곤 하였으나, 지난 70년대 철도가 개설될 당시 이산의 흙을 파내 철길을 놓음으로 산 형태가 훼손되어 지역주민들이 안타깝게 여기고 있어 북평면에서 자연적인 음(陰), 양(陽)의 조화를 주제로 한 난향로원(蘭香路苑)을 조성하게 되었다.

 

 

음석(陰石) 

 

이곳에 있는 돌은 여성의 은밀한 곳을 그대로 빼닮았다하여

음석(陰石)이라 부르고 있으며,

이돌을 만지면 여자들이 바람나다고 해서 마을에서 흙으로 덮었으나

크고 작은 사고가 많이 발생하여 다시 파 놓았으며,

이러한 일 또한 난향신의 조화라고 여겨 이돌을 귀중히 여기고 있으며,

자손이 귀한 사람들은 자손 번창을 기원하는 뜻으로 이 돌을 드나드는 의식을 행하기도 한다.

 

양석(陽石)

 

이돌은 남성을 상징하는 모양으로 양석(陽石)이라 부르며,

음석(陰石)과 더불어 자연적인 음(陰) ⊙ 양(陽)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였으며,

어린 나이에 꽃다운 목숨을 잃은 난향의 원혼을 달래

마을의 안녕과 지역의 발전을 기원하기 위하여

숙암리 대정원에서 이곳으로 옮겨 놓았으며

아들이 귀한 사람들이 득남을 기원하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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