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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행복하다 - 신경림 <1일 1편 시(詩) 필사하기>

물빛향기 2020. 5. 27. 20:44

143)  그리고 나는 행복하다         - 신경림

 

어린 시절 나는 일없이 길거리를 쏘다니기도 하고

강가에 나가 강물 위를 나는 물새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카사블랑카의 뒷골목을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바이칼호의 새 떼들 울음소리를 듣기도 했으니까

 

다 늙어 꿈이 이루어져

바이칼호에 가서 찬 호수에 손도 담가보고

사하라에 가서 모래 속에 발도 묻어보고

파리의 외진 카페에서 포도주에 취하기도 했다

그때도 나는 행복했다, 밤마다 꿈속에서는

친구네 퀴퀴한 주막집 뒷방에서 몰래 취하거나

아니면 도랑을 쳐 얼개미로 민물새우를 건지면서

 

창밖엔 눈발이 치고

모래바람 부는 사하라와 고추잠자리 떼 빨간 동구 앞길을

번갈아 오가면서, 지금 나는

병상에서 행복하다

 

    - 월간<현대문학>(2019년 1월호)

===

행복하다

 

길거리를 쏘다니면서 걷는

나를 볼 때 행복하다.

둘레길을 걷는 것도

나는 행복하다.

산에 오르는 것도

나는 행복하다.

자전거 여행을 하는 것도

나는 행복하다.

좀 더 먼 나라에 가서 걷기 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