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그리고 나는 행복하다 - 신경림
어린 시절 나는 일없이 길거리를 쏘다니기도 하고
강가에 나가 강물 위를 나는 물새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카사블랑카의 뒷골목을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바이칼호의 새 떼들 울음소리를 듣기도 했으니까
다 늙어 꿈이 이루어져
바이칼호에 가서 찬 호수에 손도 담가보고
사하라에 가서 모래 속에 발도 묻어보고
파리의 외진 카페에서 포도주에 취하기도 했다
그때도 나는 행복했다, 밤마다 꿈속에서는
친구네 퀴퀴한 주막집 뒷방에서 몰래 취하거나
아니면 도랑을 쳐 얼개미로 민물새우를 건지면서
창밖엔 눈발이 치고
모래바람 부는 사하라와 고추잠자리 떼 빨간 동구 앞길을
번갈아 오가면서, 지금 나는
병상에서 행복하다
- 월간<현대문학>(2019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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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다
길거리를 쏘다니면서 걷는
나를 볼 때 행복하다.
둘레길을 걷는 것도
나는 행복하다.
산에 오르는 것도
나는 행복하다.
자전거 여행을 하는 것도
나는 행복하다.
좀 더 먼 나라에 가서 걷기 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