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시(詩) 뜨락

권할 수 없는 기쁨 - 김이듬

물빛향기 2020. 12. 13. 17:42

1. 시(詩) 뜨락 :  권할 수 없는 기쁨          - 김이듬

 

내 친구는 스피드광

오토바이 레이싱을 즐기는 사람

그런 그가 사고를 당했다

지리산을 한 바퀴 돌아 나한테 놀러 오겠다더니

자동차를 들이받아 오토바이는 박살났지만

자기 몸은 전혀 다치지 않았다며 껄껄 웃는다

하늘로 붕 날아오르는데 그물 같은 게 받쳐주는 것 같았다며

타고난 바이커란다

 

전화 끊고 저수지 주변을 서성거린다

수위를 조절할 수 있으면서도 열렬히

그런 건 없을까 피로 물든 바위틈

고원의 당나귀든 상인의 낙타든 모래알에 이르도록 걸으리

묵직하게 새 한 마리 날아오른다

검은 얼음판 위에 앉아 있던 새

날개가 있는 슬픔

 

퇴화한 다리 아래

높은 곳으로 떨어져 죽어가는 예감

날 수 있어서

날아야 하니까

버려지지 않는 능력 때문에

 

- 시집히스테리아(문학과지성사,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