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듬 3

권할 수 없는 기쁨 - 김이듬

1. 시(詩) 뜨락 : 권할 수 없는 기쁨 - 김이듬 내 친구는 스피드광 오토바이 레이싱을 즐기는 사람 그런 그가 사고를 당했다 지리산을 한 바퀴 돌아 나한테 놀러 오겠다더니 자동차를 들이받아 오토바이는 박살났지만 자기 몸은 전혀 다치지 않았다며 껄껄 웃는다 하늘로 붕 날아오르는데 그물 같은 게 받쳐주는 것 같았다며 타고난 바이커란다 전화 끊고 저수지 주변을 서성거린다 수위를 조절할 수 있으면서도 열렬히 그런 건 없을까 피로 물든 바위틈 고원의 당나귀든 상인의 낙타든 모래알에 이르도록 걸으리 묵직하게 새 한 마리 날아오른다 검은 얼음판 위에 앉아 있던 새 날개가 있는 슬픔 퇴화한 다리 아래 높은 곳으로 떨어져 죽어가는 예감 날 수 있어서 날아야 하니까 버려지지 않는 능력 때문에 - 시집『히스테리아』(문학..

사과 없어요 - 김이듬

13) 사과 없어요 - 김이듬 아 어쩐다, 다른 게 나왔으니, 주문한 음식보다 비싼 게 나왔으니, 아 어쩐다, 짜장면 시켰는데 삼선 짜장면이 나왔으니, 이봐요, 그냥 짜장면 시켰는데요. 아뇨, 손님이 삼선짜장면이라고 말했잖아요, 아 어쩐다, 주인을 불러 바꿔 달라고 할까, 아 어쩐다, 그러면 이 종업원이 꾸지람 듣겠지, 어쩌면 급료에서 삼선짜장면 값만큼 깎이겠지, 급기야 쫓겨날지도 몰라, 아아 어쩐다, 미안하다고 하면 이대로 먹을텐데, 단무지도 갖다 주지 않고, 아아 사과하면 괜찮다고 할텐데, 아아 미안하다 말해서 용서받기는 커녕 몽땅 뒤집어쓴 적 있는 나로서는, 아아, 아아, 싸우기 귀찮아서 잘못했다고 말하고는 제거되고 추방된 나로서는, 아아 어쩐다, 쟤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고, 그래 내가 잘못 발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