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오래된 기도 - 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그렇게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 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동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