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등산 여행/걷 기 얘기

서울성곽

물빛향기 2012. 5. 14. 19:51

 

 

 

    1392년 개성 수창궁에서 조선 왕조를 개국한 태조는 즉위한지 한 달도 못 되어 한양 천도 계획을 명하고, 태조 4년(1395) 경복궁, 종묘, 사직단의 건립이 완성되자 곧바로 정도전이 수립한 도성 축조 계획에 따라 서울 성곽을 수축하기 시작하였다.

   서울 성곽은 북악산(342m), 낙산(125m), 남산(262m), 인왕산(338m)을 잇는 총 길이 59,500자(약 18.2km)의 성곽으로 평지는 토성, 산지는 산성으로 계획되었다.  이 방대하고 시급한 사업을 농한기에 완성하기 위하여 이듬해인 1396년 1,2월의 49일 동안 전국에서 11만 8천 명을 동원하여 성곽의 대부분을 완공하였고, 가을 농한기인 8,9월의 49일 동안에 다시 79,400명을 동원하여 봄철에 못다 쌓은 동대문 구역을 완공하는 동시에 4대문과 4소문을 준공하였다.

   그후 27년이 지나 세종은 서울성곽을 전면 석성(石城)으로 수축하는 대대적인 보수 확장 사업을 벌였다.  세종 4년(1422년) 1월 겨울 농한기에 전국에서 약 32만 명의 인부와 2,200명의 기술자를 동원하여 완공하였다.  서울의 인구가 약 10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의 공사였고, 이 공사로 인해 발생한 사망자 수만 872명에 달했다.  이것이 지금 서울 성곽의 골격이다.

   이후 서울성곽을 재정비했던 숙종 30년(1704년)까지 260년간 서울성곽은 부분적인 보수만 있었을 뿐 큰 붕괴는 없었다.  본래 서울성곽은 도성을 방어할 목적으로 쌓았지만 정작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서울성곽은 제구실을 하지 못해 선조가 의주로 피난하였기 때문에 성곽 자체는 전란으로 인한 큰 피해는 없었다.

   1704년, 숙종은 일부 신하들이 청나라와의 조약을 들어 반대하는 것을 물리치고 서울성곽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나아가 북한산성까지 쌓으며 도성의 방어체제를 정비하였다.   이것이 근대 사회로 들어오면서 의도적으로 헐어내기 이전의 서울성곽이다.

   이후 1899년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 전차를 부설하면서 동대문과 서대문 부근의 성곽 일부가 헐려 나갔고, 이듬해인 용산과 종로 사이 전차 부설을 위해 남대문 부근을 철거하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서대문과 혜화문(동소문)이 헐리며 사실상 서울의 평지 성곽은 모두 철거되어 오늘날에는 총 길이 18.2km 중 산지 성곽 10.5km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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