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익어가는 하루(필사)

겨울 숲을 바라보며 - 오규원

물빛향기 2020. 5. 21. 20:00

겨울 숲을 바라보며          - 오규원

 

겨울 숲을 바라보며

완전히 벗어버린

이 스산한 그러나 느닷없이 죄를 얻어

우리를 아름답게 하는 겨울의

한 순간을 들판에서 만난다.

 

누구나 함부로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 누구나 함부로 완전히

벗어버릴 수 없는

이 처참한 선택을

 

겨울 숲을 바라보며, 벗어버린 나무들을 보며, 나는

이곳에서 인간이기 때문에

한 벌의 죄를 더 얻는다.

 

한 벌의 죄를 더 겹쳐 입고

겨울의 들판에 선 나는

종일 죄, 죄 하며 내리는

눈보라 속에 놓인다.

 

    - 시집<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문학과 지성사, 1978)

 

=== "누구나 함부로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인의 말처럼, 함부로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이 행복할 것이다.

벌거숭이였던 겨울 숲이 모두 벗어버리고 서 있는 나무처럼,

우리의 죄의 모습들을 벗어버리고 살아가는 삶이 되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