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행성을 지나는 늙은 선로공 - 황병승
하늘은 맑고 시원한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오후
빛바랜 작업복 차림의 한 늙은 선로공이
보수를 마치고 선로를 따라 걷고 있다
앙상한 그의 어깨 너머로
끝내 만날 수 없는 운명처럼 이어진 은빛 선로
그러나 언제였던가, 아득한 저 멀리로
화살표의 끝처럼 애틋한 키스를 나누던 기억
보수를 마친 한 늙은 선로공이
커다란 공구를 흔들며 선로를 따라 걷고 있다
- 시집<육체쇼와 전집>(문학과 지성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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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길에 만나는 철길이다.
이 철길은 예전에는 기차가 왕래했겠지만, 지금은 보기 힘들다. 두 레일이 길게 뻗어 있고, 두 레일 위에는 기차는 안 보이고, 강아지만 뛰어노는 철길이 있다. 맑은 하늘 아래 기차 레일은 어디로 뻗어있는가?
아침 햇살에 반사되면서 두 레일은 평행을 이루며 뻗어 있어서, 만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과의 관계도 평행을 이룬 레일처럼, 나무들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아름답게 보인다. 거리들 두고 존경과 설렘으로 가득한 행복한 관계를 만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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