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숲을 바라보며 - 오규원
겨울 숲을 바라보며
완전히 벗어버린
이 스산한 그러나 느닷없이 죄를 얻어
우리를 아름답게 하는 겨울의
한 순간을 들판에서 만난다.
누구나 함부로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 누구나 함부로 완전히
벗어버릴 수 없는
이 처참한 선택을
겨울 숲을 바라보며, 벗어버린 나무들을 보며, 나는
이곳에서 인간이기 때문에
한 벌의 죄를 더 얻는다.
한 벌의 죄를 더 겹쳐 입고
겨울의 들판에 선 나는
종일 죄, 죄 하며 내리는
눈보라 속에 놓인다.
- 시집<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문학과 지성사, 1978)
=== "누구나 함부로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인의 말처럼, 함부로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이 행복할 것이다.
벌거숭이였던 겨울 숲이 모두 벗어버리고 서 있는 나무처럼,
우리의 죄의 모습들을 벗어버리고 살아가는 삶이 되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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