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익어가는 하루(필사)

두부 - 이영광

물빛향기 2020. 6. 6. 15:34

두부            - 이영광

 

두부는 희고 무르고

모가 나 있다

두부가 되기 위해서도

칼날을 배로 가르고 나와야 한다

 

아무것도 깰 줄 모르는

두부로 살기 위해서도

열두 모서리,

여덟 뿔이 필요하다

 

이기기 위해,

깨지지 않기 위해 사납게 모 나는 두부도 있고

이기지 않으려고,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모질게

모 나는 두부도 있다

 

두부같이 무른 나도

두부처럼 날카롭게 각 잡고

턱밑까지 넥타이를 졸라매고

어제 그놈을 또 만나러 간다

 

   - 시집<나무는 간다>(창비, 2013)

 

◈ 콩이 두부가 되기 위한 과정

- 물에 불리고, 삶고, 갈고,

끓여지고, 눌러지는 과정,

고통과 견딤의 과정을 걸쳐서 두부를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