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시(詩) 뜨락

남몰래 오줌을 누는 밤 - 안명옥

물빛향기 2021. 3. 8. 13:45

남몰래 오줌을 누는 밤        - 안명옥

 

놀라워라, 호프집에서 술을 마시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간다 참지 못할 만큼 오줌이 마려워

걸음이 평소보다 급하다 오줌 마려운 것이,

나를 이렇게 집 쪽으로 다급하게 몰고 가는 힘이라니!

오줌이 마렵지 않았다면 밤 풍경을 어루만지며

낮엔 느낄 수 없는 밤의 물컹한 살을 한 움큼

움켜쥐며 걸었을 것을 아니 내 눈길이

보이지 않는 어둠 저편, 그 너머까지

탐색했을 지도 모를 것을

지금 내게 가장 급한 것은 오줌을 누는 일

지나가는 사람들 없는 사이

무릎까지 바지를 끌어내리고 오줌을 눈다

오줌을 누는 것은 대지와의 정사 혹은

내 속의 어둠을 함께 쏟아내는 일,

그리하여 다시 오줌이 마려워오는 순간이 오기까지

내 속이 잠시나마 환해지는 일

변기가 아닌, 이렇게 아파트 단지의 구석에 쭈그려 앉아

몰래 오줌을 누는 일이

 

일탈의 쾌감이 내川를 이뤄

이렇듯 밤의 대지를 뜨겁게 적실 수 있다니,

어둠 속에서 남몰래 오줌을 누는 밤

내 엉덩이가 달이 되어 공중으로 둥둥 떠오른다

 

   - 시집 <칼>(천년의 시작, 2008)

 

다급하게 오줌이 마려운 것이

물컹한 살을 한 움큼

밤 풍경을 어루만지며

 

오줌을 누는 것과 대지와의 정사를 나누기

내 속의 어둠과 뜨끈한 오줌을 시원하게

 

몰래 오줌 누는 일

밤의 대지를 뜨겁게 적실 수 있도록 쭈그려 않는다.

 

아하~~

엉덩이 달이 되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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