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나를 찾는 여행(수필)

아내의 밥상

물빛향기 2025. 4. 18. 19:56

아내의 밥상

아침은 언제나 간단하다.

커피 한 잔, 식빵 한 조각이면 충분하다. 때로는 전날 남은 찬밥에 김치 하나 얹어 먹을 때도 있다. 바쁜 출근길, 아내는 간단한 음식을 손에 쥐어 주며 말한다. “점심은 꼭 챙겨 먹어.” 그 말 한마디에, 하루를 살아갈 힘이 스며든다.

 

점심은 대개 회사 근처 식당에서 해결한다. 따뜻한 국물 한 그릇이면 속이 풀리지만, 늘 분주하고 시끄럽다. 마음을 내려놓기는 어렵다. 아무리 잘 차려진 밥이어도, 어쩐지 허전하다. 밥을 먹었는데도 마음 한구석이 비어 있는 느낌.

 

그러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현관문을 열면 은은한 국물 냄새가 반긴다. 조용한 주방, 노란 조명 아래 익숙한 풍경. 아내는 이미 식탁을 다 차려두고 있다. 조용히 내 가방을 받아주고, 말없이 밥 먹자고 눈짓을 보낸다. 그 순간, 하루의 긴장이 스르르 풀린다.

 

그저 밥 한 끼. 하지만 그 밥상 앞에 앉으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놓인다. 허기진 건 배보다도 마음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아내는 말이 많지 않다. 나도 그렇다. 우리는 식사 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하진 않는다. 그저 숟가락 소리, 젓가락 부딪는 소리, 그리고 가끔 눈빛을 주고받는 정도. 하지만 그 적막한 시간 속에, 어떤 말보다 깊은 교감이 있다. 아내는 내 하루를, 나는 아내의 마음을 느낀다.

 

나는 늘 , 잘 먹었어한마디로 끝낸다. 그게 고맙다는 뜻이고, 맛있었다는 의미이며, 사랑한다는 마음이다. 물론 말로 표현하면 좋겠지만, 어쩐지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아내는 안다. 내가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그 짧은 말 뒤에 담긴 마음을.

 

그 밥상에는 단순히 반찬 몇 가지만 있는 게 아니다. 하루 종일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손끝으로 간을 맞춘 정성이 담겨 있다. 아내의 시간과 마음이 그대로 들어 있다. 어떤 날은 미소된장국, 어떤 날은 계란말이, 또 어떤 날은 조용히 손으로 무친 나물 하나. 그 모든 것들이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말로는 다 전할 수 없기에, 나는 밥 한 숟갈 한 숟갈에 마음을 담아본다. 천천히, 꼭꼭 씹으며 고마움을 되새긴다. 내가 표현에 서툰 만큼, 더 정성스레 먹는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이다.

 

사실 결혼 전엔 몰랐다. 사랑은 꽃다발이나 이벤트 같은 특별한 순간에만 담겨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사랑은 매일의 밥상 위에, 조용한 눈빛에, 말 없는 기다림에 있다.

 

언젠가 아내에게 물은 적이 있다.

"매일 이렇게 밥 차리는 거, 안 힘들어?"

아내는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이 잘 먹어주니까, 그걸로 됐어.”

 

그 말에 울컥했다. 내가 무심하게 지나쳤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 마음 위에 놓여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도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자연스럽게 식탁 앞으로 간다. 그 자리는 단순한 식사의 공간이 아니라, 나를 위한 아내의 마음이 기다리는 곳이다. 말없이 차려진 밥상 앞에 앉으면, 하루의 고단함이 사르르 녹는다.

 

나는 아내가 차려준 밥을 먹으며 산다. 그 위에 담긴 따뜻한 정, 깊은 사랑, 그리고 말없이 주는 위로를 먹는다. 그것으로 나는 오늘도 살아간다. 그리고 내일도, 같은 자리에서 또 감사할 것이다. 물빛향기

 

반응형

'삶의 이야기 > 나를 찾는 여행(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침대 위의 터널(CT 촬영)  (0) 2025.04.21
각자의 은밀한 시간  (0) 2025.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