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은밀한 시간
하루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그 안을 어떻게 채우느냐는 사람마다 다르다. 겉으로 보이는 삶은 비슷해 보여도, 속에는 저마다의 색깔을 가진 은밀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 시간은 조용하고,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아도 소중한 것. 그런 시간이 있어야 우리는 지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다.
우리 가족은 다섯 식구다.
겉보기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다섯 사람이지만, 각자가 자기만의 공간, 자기만의 리듬, 자기만의 숨결을 품고 하루를 살아간다. 아이들은 책보다는 휴대폰 속 작은 세계에 더 익숙하다. 게임과 SNS는 그들에게 또 다른 삶의 무대이자 쉼표다. 때로는 너무 몰두하는 모습에 걱정이 들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위로를 얻고, 연결되고, 웃고 있다는 걸 안다. 그 또한 그들만의 은밀한 시간이겠지.
아들은 요즘 운동에 빠져 있다.
구체적으로 무슨 운동을 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다만 땀이 약간 배어 있는 옷차림과 상기된 얼굴로 집에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 뭔가 좋은 에너지를 얻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 아이의 은밀한 시간 속에는 성장이 있고, 자유가 있고, 자기만의 길이 있을 것이다.
딸들은 방 안에서 조용히 강의를 다시 듣기도 하고, SNS로 친구들과 소통하기도 하며, 때로는 신앙의 시간을 갖는다.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자신을 돌보고, 마음의 여백을 채워가는 모습이 예쁘다. 그 고요함 속에서 하루하루 조금씩 단단해져 가고 있을 것이다.
아내는 아침이면 집안을 정돈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쓸고 닦는 손길에는 다정함이 묻어 있고, 틈틈이 책을 펼치고, 기도하며 자신의 시간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어느 날은 공부를 위해 조용히 모임에 나가기도 한다. 아내의 하루는 누군가를 위해 채워지지만, 그 안에서도 그녀는 자신만의 시간을 빼곡히 채우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시(詩)로 하루를 연다. 짧은 문장 하나에서 마음을 다잡고, 한 편의 에세이에서 누군가의 사유에 귀 기울인다. 지하철을 타면 비로소 내 공간이 생긴다. 그 속에서 음악을 듣거나 책을 펼치고, 때로는 그저 창밖 풍경을 바라본다. 세상의 소음을 잠시 꺼두고 나 자신을 마주하는 그 순간은 나만의 ‘케렌시아(Querencia)’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안식처. 그곳에서 나는 나를 쉬게 하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은밀한 시간’은 꼭 거창하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운동이고, 누군가에게는 기도이며, 어떤 이에게는 그저 잠시 눈을 감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다독이고, 조용히 살아가는 힘을 기른다.
우리 가족 모두, 그렇게 각자의 은밀한 시간을 갖는다. 그 시간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여백이 되고, 바쁜 일상에 작은 숨통이 되어준다. 그 조용한 시간이 쌓여 오늘을 만들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조금 더 따뜻하게 바꿔준다.
저녁이 되면 하늘은 붉게 타오른다. 잠시 스쳐가는 노을처럼, 우리의 은밀한 시간도 찰나처럼 짧지만 그 속엔 깊은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 그 시간이 우리 삶에 작은 꽃처럼 피어나길, 그리고 서로가 그 꽃을 바라보며 미소 지을 수 있기를 바란다. ㅡ 물빛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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