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등산 여행/걷 기 얘기

고양누리길(한북누리길, 서삼릉누리길)

물빛향기 2014. 7. 13. 20:46

한북누리길(2014년 6월 23일)

 

2014년 6월 23일 오전에 좀 늦게 북한산입구로 출발.

집을 나서기 전에 일기예보는 소나기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맑았다 흐렸다 하는 가운데 지하철를 타고,

불광역에 내려서 704번 버스로 이동중에,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소나기가 쏟아진다. 

 삼거리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데, 천둥 번개가 치고, 비는 약 20분 정도 세차게 내리고,

비줄기가 약해지기를 기다려다가 한북누리길을 걷기 시작했다.

 

 

 경기 고양시는 500년 조선왕조의 배후지로서 북한산성과 유명 사찰,

그리고 서삼릉과 서오릉 등 왕조의 흔적이 서려있는 곳이 바로 고양시이다. 

총 6개 코스가 있는 고양누리길은 조선왕조의 역사와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한북누리길(6.5km)이 시작되는 북한산성입구에서 삼송역을 지나

서삼릉누리길(8.25km)이 끝나는 원당역까지 14.75km을 걸었다.

 

 

한북누리길의 '한북'은 북한산의 북쪽이라는 뜻으로 시작점은

북한산성 입구 삼거리에서, 시작하여 창릉천을 따라 가다가

사곡교앞에 허리 높이의 말뚝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갈색 말뚝에 녹색 글씨로 누리길을 표시하는 'N'자 표시가 있다.

 

 

 

 

조금전 소나기로 인해서, 창릉천 진흙탕 물이 내려가고 있다.

 

 

 창릉천(덕수천) 다리 사곡교를 건너와서, 이정표가 없어서

좌측(창릉천 이야기 안내판 서있는 방향)으로 이동, 두봉이네 캠프장을 지나 흥국사 앞까지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와서, 효진교회 방향으로 직진을 하여,

효진교회 앞 부근에 산책로 길 이정표 따라가면 한북누리길 이정표가 나온다.

 

 

 

 

 

어느 가게 앞에 있는 조각작품을 촬영

 

 

 

이정표를 다시 만나니 반갑다. 

 

 

 

중고개에서 왼편으로 가면 옥녀봉(205m),

고개를 바로 넘으면 덕양구 오금동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이곳에서 북으로 방향을 틀면 노고산(495m)이다.

 

이 구간은 예나 지금이나 군사적 요충지로 통한다고 한다.

 

 

중고개 이야기

 

중고개는 고양시 덕양구 지축동과 오금동 사이에 위치한 고개의 이름이다. 

주로 고개 아래의 오금동 삼막골 주민들과 지축동 중고개 마을 주민들이 이용하였으며 중고개란 이름은

이곳을 통해 스님(중)들이 많이 왕래 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고개 정상에는 예전 성황당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돌무지가 남아 있으며

북쪽으로는 노고산이 있고 남쪽으로는 옥녀봉이 있다.

 

옥녀봉(205m)으로 올라가는 산책로 이정표.

 

옥녀봉에 올라갔더니, 옥녀는 없고, 군사시설물이 정상에 있어서 촬영을 못하고, 내려왔다.

 

 

 

이곳 사거리에서 한북누리길을 이탈하고 말았다.

371국도(일영로) 사거리에서 '서울(구파발)' 방향으로 이정표를 잘못 보고, 

누리길을 이탈해서 삼송역까지 갔다.

 

 

삼송역 7번 출구앞에서 한북누리길을 마무리했다.

이탈한 곳은 다음에 그 부근 까지 다시 도전하기로 하고,

서삼릉누리길의 시작점으로 갔다.

 

 

 서삼릉누리길

 

한북누리길이 끝나고, 서삼릉누리길의 시작점이 삼송역 5번 출구앞.

 

"이 길에는 또 어떤 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도보 여행자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모티브이다.

 

 

고양중고등학교 정문앞

 

삼송역 5번 출구에서 직진 약 100여 미터쯤,,, 

삼송로 139번길 방향으로 우측에 삼송 한울 어린이집 모퉁이를 돌아서 직진하면,

아래 사진모습이 나온다.

 

 

아래 삼거리에서 어느길로 갈지? 여러분은 어느 길로 선택하실지?

나는 우측 길을 선택해서 가다가 다른 도보 여행자를 만나서 물어보고, 다시 왼쪽으로 갔다.

 

 

명나라 이여송과 숫돌고개이야기

임진왜란 때 명나라 이여송이 왜군에게 패한 뒤 복수를 다짐하며 '칼을 갈았다'는 숫돌고개 상수리나무 숲길. 임진왜란 발발 이듬해인 1593년 조선의 원병으로 출병한 명나라 이여송 군대는 이 고개에서 왜군을 맞아 승전보를 울렸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편안하게 서울로 입성할 준비를 하던 이여송은 북한산 북면 창릉천에 주둔한 왜군의 매복에 걸려 크게 패했는데요. 퇴각명령을 내린 이여송은 이 고개에서 칼을 갈며 왜군에게 복수를 다짐했다. '칼을 갈았다'해서 붙여진 이름이 숫돌고개, 한자로는 '여석령'(礪石嶺)이다.

 

 

 

상수리나무 숲길에서 솔개약수터까지 약 1.5km 정도 이어진 숲은 조용하고 편안한 길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소나기를 몇번을 만나는 날이었지만, 천둥과 번개가 치는 가운데 누리길을 걸었다.

 

금새 소나기가 내린 관계로 누리길에 흙탕물이 내려 가고 있다.

이곳에서 소나기를 피해 한참을 기다렸다.

 

 

삼송리의 작명에 얽힌 설명

고양, 특히 삼송리 근방에는 조선시대 왕릉이 많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선대왕의 능을 찾는 임금의 행차가 연중 몇 차례씩 있었다. 

 행렬은 서오릉을 지나 서삼릉으로 이어졌는데, 소나무 세 그루가 유난히 눈에 띤 곳이 있었으며,

그래서 삼송리(三松里)라 이름 붙여졌다는 것이다.

특히 이 마을은 '소나무가 무성한 큰 고개'라 하여 솔개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솔개 약수터에서 농협대학으로 가는길은 비록 찻길을 이용해야 한다.

홍익교회를 지나 나오면, 찻길에서우측으로 가야한다. 

소나기가 쏟아지는 가운데 이 찻길을 걸어서 농협대학을 지나서 원당경주마목장과 서삼릉으로 갔다.

 

 

서삼릉

고양시 원당동에 소재한 효릉, 희릉, 예릉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중종(1488~1544)의 계비 장경왕후 윤씨(1491~1515)의 희릉을 조성하면서

서삼릉의 역사가 시작 됐습니다. 

 이후 중종의 아들인 인종(1515~1545)과 비 인성왕후 박씨(1514~1577)의 효릉,

철종(1831~1863)과 비 철인 왕후 김씨(1837~1878)의 예릉이 자리 잡았다.

 

 

 

 

 

 

 

 

서삼릉을 지나오면 한국스카우트연맹훈련원을 지나 수역이 마을에 다다른다.

수역이 마을에서 다시 상수리나무 숲인 수역이길을 지나면 배다리술박물관이 나온다.

 

 

 

 

 

 

 

 

 

 

서삼릉누리길은 3호선 삼송역에서 시작해 원당역까지,

지하철을 타면 3~4분이면 올 수 있지만 굽이굽이 길을 돌아오면 2~3시간이 걸린다.

 소나기를 두차례를 만나면서, 힘겹게 누리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