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익어가는 하루(필사)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 정호승 // 산 너머 저쪽 - 칼 붓세

물빛향기 2020. 1. 19. 18:56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정호승

 

나는 희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

희망에는 희망이 없다

희망은 기쁨보다 분노에 가깝다

나는 절망을 통하여 희망을 가졌을 뿐

희망을 통하여 희망을 가져본 적 없다

 

나는 절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

희망은 절망이 있기 때문에 희망이다

희망만 있는 희망은 희망이 없다

희망은 희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보다

절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이 중요하다

 

희망에는 절망이 있다

나는 희망의 절망을 먼저 원한다

희망의 절망이 절망이 될 때보다

희망의 절망이 희망이 될 때

당신을 사랑한다

 

   시집<나는 희망을 거절한다>(창비, 2017)

   '희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니, 이 모순의 형용을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다. 희망은 앞날에 대한 기대이며 누구나 희망을 갖고 살아간다. 정신적 물질적으로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인간에게 반짝이는 희망은 현재 시제 안에서는 실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언제나 결핍의 상태로 현재에 속한다. 언제나 미래 시제에서 살고 있는 희망은 '현재 시재'와는 거리가 있다. 그 거리가 멀든 가깝든 희망은 '현재'와 거리를 두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시인은 이 시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의 뒷모습까지도 살피고 사랑하고 있다. 시인은 보이지 않는 안섶 솔기를 뚫는 바늘자국 같은 아픔을 사랑한다. 그래서 '희망에는 절망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정경시인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다. 극과 극, 그 양 끝을 보라. 한 극 뒤는 바로 다른 편 극 아니던가. 절망을 먼저 하고 절망을 사랑하자. 절망과 끝없이 화해하고, 그리고 보이는 희망을 보자. 자세히 보자. 희망이 희망한다고 다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누가 희망의 실체를 거절하겠는가. 희망은 절망의 밑바닥까지 다 내려간 후 그 단단한 절망 위에 세운 희망이 싹틀 수 있지 않을까. 그래, 절망이여 오라. 얼마든지 오라. 다 받아줄게. 그렇게 절망을 사랑하자. 쓰디쓴, 아픈, 그 절망을 다 받아준 사람이 아니고서는 희망을 품을 수도 말할 수도 없으리라. 그렇게 절망은 희망 앞서 유효한 것이다. 

   희망이란 말은 젊은 세대는 물론 나이 먹은 사람들도 그 단어 앞에서는 가슴이 설렌다. 누구나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에 대한 기대와 기다림이다. 유토피아와 샹그릴라에 대한 동경이 부정적인 현실의 깊이에 비례하는 것처럼 희망은 절망의 크기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희망은 절망적인 현재 안에서 저기미래의 시계 속에서 환히 빛나는 그 무엇이다. 드디어 희망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희망을 말하려는 자여, 가지려는 자여, 그 누구라도 칼 붓세산 너머 저쪽한 번쯤 다시 외워보며 가져볼 일이다. 그것이 희망을 이해하는 길 아닐까. 그것이 희망을 이해하는 길 아니던가.   - 임창현/시인, 문학평론가

산 너머 저쪽

               ㅡ 칼 붓세(1872~1918)

 

산 너머 저쪽 하늘 저 멀리

행복이 있다고 말들 하기에

, 남 따라 행복을 찾아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돌아왔네.

산 너머 저쪽 하늘 저 멀리

행복이 있다고 사람들은 또 말들 하네.


=== 절망, 고통의 아픔을 손으로 잡고, 희망을 갖고 살자!

저쪽 하늘 저 멀리 행복이 있다고 희망을 갖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가져보자!

=== 행복과 고통은 우리 삶 속에 함께 합니다. 

고통 속에 살아본 사람만이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고 행복한 삶을 살지요.

행복은 저 산 넘머 저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사람을 따라 행복을 찾아갈 수도 없지요.

그 행복이 지금 여기에 내 삶 속에

희망과 절망이 함께 할 때,

작은 행복을 발견 할 수 있답니다.

지금 희망과 절망을 함께 하면서,

마음을 비우고 내 곁에 있는 행복을 찾으세요. 

마음을 비우고 작지만 소소한 행복을 기다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