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의 시 ㅡ 박노해
문풍지 우는 겨울밤이면
윗목 물그릇에 살얼음이 어는데
할머니는 이불 속에서
어린 나를 품어 안고
몇 번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시네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소금창고 옆 문둥이는 얼어 죽지 않을랑가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네
찬바람아 잠들어라
해야 해야 어서 떠라
한겨울 얇은 이불에도 추운 줄 모르고
왠지 슬픈 노래 속에 눈물을 훔치다가
눈산의 새끼노루처럼 잠이 들곤 했었네
- 시집<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느린걸음, 2010)
=== 문풍지 우는 겨울밤에 윗목에 물그릇을 항상 두고,
할머니보다는 어머니 옆에서 잠을 자던,
어린 시절이 기억이 난다.
자다가 목이 말라 물을 찾으면,
어머니는 윗목에 둔 물그릇에 손이 가지만,
얼어 있을 때가 많다.
그러면 추운 날씨에도 부엌으로 가서
얼어버린 양동이의 물을 떠서 먹여 주시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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