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익어가는 하루(필사)

혼자 가는 먼집 - 허수경

물빛향기 2020. 3. 24. 21:55

혼자 가는 먼집        - 허수경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 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 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 시집<혼자 나는 먼 집>(문학과 지성사, 1992)

    

===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한 때 외로움과 아픔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의 문이 열릴 때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어 당신을 불러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