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익어가는 하루(필사)

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 순례 11 - 오규원

물빛향기 2020. 7. 12. 16:01

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 순례 11       - 오규원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 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만의 잎은 제각기
몸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
들판의 고통 하나도
다른 곳에서 바람에 쓸리며
자기를 헤집고 있다.

피하지 마라
빈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우리가 늘 흔들리고 있음을.

 

- 시집<순례>(초판, 민음사, 1973 / 문학동네, 1997)

 

 

===


◈ 순례(Pilgr image) = 나그네, 신성한 곳을 찾아가는 여행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온 말.
◈ 인생이란 들판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것과 비슷함.
바람에 스치면, 살아나는 것들이 있다. 모든 생명들은 몸부림치며, 아프게 살아가며 희망의 새싹을 피우고 있다.
◈ “바람이 분다. 살아보아야겠다.”는 폴 발레리의 詩처럼, 오늘도 바람이 분다.
우리는 바람에 흔들리면서 들판을 걸어가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슬픔과 고독과 아픔과 함께하면서 피할 수 없는 바람이고, 우리는 그 바람 속에서 희망을 갔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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