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에세이필사

'여럿이 읽어야 하는 책, 니체'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메멘토>aladin.kr/p/K68fM

물빛향기 2020. 7. 15. 22:33

♣ 4-3일차 에세이 필사하기 - '여럿이 읽어야 하는 책, 니체'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메멘토>

 

aladin.kr/p/K68fM

 

글쓰기의 최전선

연구공동체 수유너머R과 학습공동체 가장자리에서 글쓰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는 은유의 글쓰기론이다.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누구나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들, 고민들, 깨침들에 관한 이야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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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사 본문

 

여럿이 읽어야 하는 책, 니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처음 읽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구절은 이것이다. “삶은 한낱 노역과 불안뿐이거늘.” 이 부분에 형광펜을 진하게 그었다. 삶에 관한 본질적 정의라고 느꼈다. 실연당한 사람이 <헤어진 다음날> 같은 노래 가사에 기대듯 나는 니체의 말에 의지했다. 나중에 니체를 공부하고 나니 ‘노역’이나 ‘불안’ 같은 말은 긍정의 철학자인 니체가 쓰는 어휘가 아니었다. 저 구절을 다시 찾아보았다. 소제목이 ‘죽음의 설교자들에게’였다. “삶은 한낱 노역과 불안이라는 등 삶을 무겁게 만드는 온갖 말을 퍼뜨리면서도 그 한낱 고난의 연속에 불과한 생을 끝내지도 않고 달라붙어 있다”며 꼬집은 것이다. 그런 것도 모르고 나는 맥락을 무시하고 저 구절만 취했다. 병든 자의 눈으로 읽어낸 것이다. 니체가 비판하는 말인지 옹호하는 말인지도 분간 못 했다. 이렇게 니체의 글은 위험하다. 자신의 건강에 따라, 체험에 따라, 욕망에 따라 다르게 들리고 다르게 보인다. 내가 회복기의 환자가 되었을 때는 이런 문장에 꽂혔다. “고뇌하는 모든 것은 살기를 원한다.” 아, 이거였구나. 싶었다. 아이들 둘 키우고 집필 노동하면서 거기다가 공부 좀 해보겠다고 등골이 휘는, 나의 실존적 뒤척임은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을까.
   나는 사로잡혔다. 정확한 뜻과 내용을 파악할 수는 없지만 니체의 말들이 거대한 초록색 그물처럼 몸을 덮쳤다. 갈피마다 행간마다 섬세하면서도 격정적인 문체, 날카로운 통찰의 언어가 춤을 추고 있었다. 정념 과잉의 언어, 생의 의지를 고양시키는 말들, 폭포처럼 떨어지는 아포리즘은 그대로 시였다.   
                                          - p.140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메멘토>


■ 문장 분석

- “삶은 한낱 노역과 불안뿐이거늘.” 니체의 구절을 가져와 ‘삶에 관한 본질적 정의라고 느꼈다.’ 라며 문장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 “삶은 한낱 노역과 불안이라는 등 삶을 무겁게 만드는 온갖 말을 퍼뜨리면서도 그 한낱 고난의 연속에 불과한 생을 끝내지도 않고 달라붙어 있다”고 니체를 공부하고 난 뒤 다시 재해석한 부분입니다. 
- ‘병든 자의 눈으로 읽어낸 것이다. 니체가 비판하는 말인지 옹호하는 말인지도 분간 못 했다.’ 텍스트를 오독하지 않고 읽어낸다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되게 만드는 지점입니다.
- ‘이렇게 니체의 글은 위험하다. 자신의 건강에 따라, 체험에 따라, 욕망에 따라 다르게 들리고 다르게 보인다.’ 니체의 글이 위험한 이유를 듭니다. 건강/ 체험/ 욕망에 따라 해석을 다르게 할 수 있네요.
- “고뇌하는 모든 것은 살기를 원한다.”  이 문장에 꽂힌 이유를 다음 문장(‘아이들 둘 키우고 집필 노동하면서~~~살기 위한 몸부림이었을까)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 ’‘니체의 말들이 거대한 초록색 그물처럼 몸을 덮쳤다.’ 니체의 말들=거대한 초록색 그물(?그물색깔이 초록색일까...)이라고 비유하네요. 
- ‘갈피마다 행간마다 섬세하면서도 격정적인 문체, 날카로운 통찰의 언어가 춤을 추고 있었다.’ 니체의 말이 저자를 사로잡은 이유를 설명합니다.
- ‘정면 과잉의 언어, 생의 의지를 고양시키는 말들, 폭포처럼 떨어지는 아포리즘은 그대로 시였다.’ 다른 이유로 자신을 사로잡은 근거를 알려줍니다. 

 

♣ 필사하기

 

 

필사 본문 요약)

     * 아포리즘 : (다음사전) 신조, 원리, 진리 등을 간결하고 압축적인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

 

   “삶은 한낱 노역과 불안뿐이거늘”(니체의 글) ===> 삶에 관한 본질적 정의하고 느꼈다.

   “삶은 한낱 노역과 불안이라는 등 삶을 무겁게 만드는 온갖 말을 퍼뜨리면서도 그 한낱 고난의 연속에 불과한 생을 끝내지도 않고 달라붙어 있다.” ===> 니체를 공부하고 난 뒤, 재해석한 부분.

 

    병든 자의 눈으로 읽어낸 것이다. 니체가 비판하는 말인지 옹호하는 말인지도 분간 못했다. 이렇게 니체의 글은 위험하다, 자신의 건강에 따라, 체험에 따라, 욕망에 따라 다르게 들리고 다르게 보인다.

 

   “고뇌하는 모든 것은 살기를 원한다.”

   니체의 말들이 거대한 초록색 그물처럼 몸을 덮쳤다. 갈피마다 행간마다 섬세하면서도 격정적인 문체, 날카로운 통찰의 언어가 춤을 추고 있었다. 정념 과잉의 언어, 생의 의지를 고양시키는 말들, 폭포처럼 떨어지는 아포리즘은 그대로 시였다.

 

 

단상)

   책 읽기를 좋아해서 출퇴근 시간에, 에세이, 철학, 소설 등등 다양한 책을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다. 온라인 독서 모임에서도 함께 읽는 인문 서적들도 있는데, 함께 각자 있는 곳에서 읽고, 발췌와 단상을 쓰는 모임이 있다.. 그곳에서 함께하지 않는다면 읽지 못하고 가는 그런 책을 만나기도 했다. 오늘 필사 본문에도 있는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도 혼자 읽어 보려고, 사다놓고는 읽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