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 아래, 이름 없이
부모님께 드리는 작은 마음의 글.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친구, 연인, 동료, 선생님… 하지만 가장 오랫동안 곁에 있었으면서도 가장 쉽게 지나치는 이름, 바로 ‘부모님’이라는 존재입니다.
어릴 적엔 그 존재가 너무나도 당연했기에 고마움보다 기대가 앞섰고, 배가 고플 땐 밥이 나왔고, 추우면 따뜻한 이불이 덮여 있었으며, 울면 어느샌가 다가와 등을 다독여주는 손길이 있었습니다. 그 모든 순간을 가능하게 한 이들이 부모님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모른 채 지나쳤습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문득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랑은 말로 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깊었고, 그 손길은 화려하진 않았지만 누구보다 따뜻했습니다. 언젠가부터 부모님의 손등이 유난히 거칠고 검게 느껴졌습니다. 한때는 그 손이 왜 그렇게 상했을까 생각도 했지만, 지금은 알 수 있습니다.
"말없이 나를 지켜준 그 손, 이제는 제가 잡아드릴 차례입니다."
그 손으로 수없이 나를 안고, 업고, 어루만지며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삶의 길을 내어주셨다는 것을요. 당신은 햇살이 뜨거운 날이면 나를 가려주는 그늘이었습니다. 나는 그늘이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한 채 걸었지만, 당신은 묵묵히 그 자리에 서서 햇빛도 바람도, 비도 대신 맞아주셨지요.
삶이 거칠고 모질어 넘어지던 날들에도, 당신은 조용히 기도하며 곁을 지켜주셨습니다. 혹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 내가 걸어야 할 길을 묵묵히 열어주셨지요.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내가 걸어온 모든 길 뒤엔 당신이 있었습니다. 삶이 고단한 날에도, 꿈이 흐릿한 날에도 늘 믿어주셨고, 포기하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고운 말보다 굳은살 박힌 손이 더 많은 것을 말해주었습니다. "괜찮아", "너를 믿는다", "네가 행복하길 바란다"는 말을 그
손이, 당신이 직접 주고 있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그 사랑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겠지요.
"당신이 있어, 내가 있습니다."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어렵게 마련한 작은 선물과 카드 한 장보다 더 오래 남는 고백을 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그저, 살아 있어 주셔서.
그리고 한 번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아 주셔서."
당신이 있어 나는 버틸 수 있었고, 당신이 있어 나는 지금도 따뜻한 길 위에 서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때로는 마음이 지치고,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나는 오늘처럼 당신의 등을 조용히 떠올릴 것입니다. 그 속에는 내가 살아온 날들이 숨 쉬고 있고, 당신이 건네준 모든 사랑이 여전히 나를 지켜주고 있을 테니까요.
'삶의 이야기 > 나를 찾는 여행(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하, 그 밤의 이름 - 편의점 야간 알바생의 기록, 첫 번째 (6) | 2025.06.03 |
---|---|
내 꿈을 위한 여행 - 1편 (2) | 2025.05.20 |
침대 위의 터널(CT 촬영) (0) | 2025.04.21 |
각자의 은밀한 시간 (0) | 2025.04.19 |
아내의 밥상 (2) | 2025.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