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익어가는 하루(필사)

이런 시(詩) - 이상

물빛향기 2019. 12. 19. 21:39

이런 시(詩)                            -  이상


역사(役事)를 하느라고 땅을 파다가 커다란 돌을 하나 끄집어 내어놓고 보니 도무지어디서인가

본듯한생각이들게 모양이생겼는데 목도(木徒)들이 그것을메고 나가더니 어디 다갖다버리고온모양이기래

쫓아나가보니 위험하기짝이없는 큰길가더라.


그날밤에 한소나기하였으니 필시그돌이깨끗이씻겼을터인데 그 이틈날가보니까 변괴(變怪)로다 간데

온데없더라.  어떤돌이와서 그돌을업어갔을까 나는 참 이런 처량한 생각에서 아래와같은작문을지었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수없소이다.  내차례에 못 올 사랑인줄은

알면서도 나혼자는 꾸준히생각하리라.  자그러면 내내어여쁘소서."


어떤돌이 내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보는것만같아서 이런시는그만찢어버리고싶더라.


    - <카톨릭 청년>(2호, 1933.7)


===  사랑하는 그대여!  그대가 있기에 나는 행복하오.


<이런 시(詩)> 전문


'역사(규모 큰 토목 - 건축공사)를 하노라고 땅을 파다가 커다란 돌을 하나 끄집어 내어 놓고 보니

도무지 어디서인가 본 듯한 생각이 들게 모양이 생겼는데


목도(일꾼)들이 그것을 메고 나가더니 어디다 갖다 버리고 온 모양이길래

쫓아나가보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 큰길가더라.


그날 밤에 한(큰)소나기 하였으니 필시 그 돌이 깨끗이 씻겼을터인데

그 이튿날 가보니까 변괴(괴이한일)로다, 간데온데 없더라.


어떤 돌이 와서 그 돌을 업어갔을까.

나는 참 이런 처량한 생각에서 아래와 같은 작문을 지었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어떤 돌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 보는 것만 같아서

이런 시는 그만 찢어 버리고 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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