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설날 - 김이듬
올해는 한 사람도 사랑하지 않으리
올해는 술을 줄이고 운동을 하리
계획을 세운지 사흘째
신년 모임 뒤풀이에서 나는 쓰러졌다
열세 살 어린 여자애에게 매혹되기 전 폭탄주 마셨다
천장과 바닥이 무지 가까운 방에서 잤다
별로 울지 않았고 별로 움직이지 않았다
날마다 새로 세우고 날마다 새로 부수고
내 속에 무슨 마귀가 들어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주문을 위는지
나는 망토를 펼쳐 까마귀들을 날려 보낸다
밤에 발톱을 깎고 낮에 털을 밀며
나한테서 끝난 연결이 끊어진 문장
혹은 사랑이라는 말의 정의(定義)를 상실한다
설날의 어원을 알 수 없지만
서렵고 원통하고 낯선 날들로 들어가는 즈음
뜻한 바는 뺨에서 흘러내리고
뜻 없이 목 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데
한 사람도 사랑하지 않는 일은
백 사람을 사랑하는 일보다 어려운 이성의 횡포
수첩을 찢고 나는 백 사람을 사랑하리
무모하게 몸을 움직이지 않으며
마실 수 있는 데까지 마셔보자고 다시 쓴다
- 시집<말할 수 없는 애인>(문학과 지성사, 2011)
=== 날마다 설날^.^
새해가 되면 나도 올해는 운동을 하고, 책을 몇 권을 읽고, 계획을 세우지만 작심삼일이 될 때가 많이 있었다. 시인처럼 이젠 날마다 설날인 것처럼 날마다 삶을 점검해야겠다.
날마다 설날처럼 또 생일처럼, 내 생애의 마지막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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