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 사과를 먹다 - 황인숙
사과 껍질의 붉은 끈이
구불구불 길어진다.
사과즙이 손끝에서
손목으로 흘러내린다.
향긋한 사과 내음이 기어든다.
나는 깎은 사과를
접시 위헤서 조각낸 다음
무심히 칼끝으로
한 조각 찍어 올려 입에 넣는다.
"그러지 마, 칼로 음식을 먹으면 가슴 아픈 일을 당한대."
언니는 말했었다.
세상에서는 칼로 무엇을 먹이는 사람 또한 있겠지.
(그 또한 가슴이 아프겠지)
칼로 사과를 먹으면서 언니의 말이 떠오르고
아 아, 그때 나,
왜 그랬을까,,,
나는 계속 칼로 사과를 찍어 먹는다.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 시집<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문학과 지성사, 1994)
===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향긋하고 상큼한 사과를 먹고 싶다.
옛전에는 칼끝으로 사과를 많이 먹었는데,,,
그로 인해선가 가슴 아픈,
시간들이 있었네요.
가슴 아픈 일을 당하지 않도록,
오늘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위해,
향긋하고 상큼한 사과를 상상하며,
당당하게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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