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맨 읽기 : 셋 번째 (p.149~323)
나는 스포츠도 싫어하고 맥주도 싫어하고 독한 술도 싫어하고 라거도 싫어해서 어떤 종류를 선택할지가 이곳 남자들에게는 정치적 종교적으로 중대한 문제일지라도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 p.162
우리 정치 문제에 대한 뉴스를 그들이 조종하는 방송국을 통해서 접하는 것이나 잘못된 종류의 신문(‘물 건너’ 신문)을 읽는 것이나 자정에 텔레비전에서 국가가 나오는 소리를 듣고 시간을 아는 등 절대로 하면 안되는 일은 아닐지라도 그래도 어쨌든 안되는 일이었다. - p.173
애국적이고 멋진 남자의 이미지, 자기 나라의 영광을 위해서 나쁜 놈들을 무찌르는 정의롭고 영웅적이고 무적이고 섹시한 이단아의 이미지가 활용되었다. 이 경우에는 우리 쪽, 그러니까 ‘길 이쪽’의 영광을 위해서이고 누가 누구를 무찌르는지 뭐가 뭔지를 다 뒤바꾸어야 했지만 말이다. - p.174
만약 그 선을 넘어 차에 탄다면 그것으로 ‘끝’이자 무언가의 ‘시작’이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정신적으로는 무엇도 분명히 표현하지 않는 애매한 영역 안에, 물리적으로는 사람이 서둘러 지나가야 할 뿐 아니라 사실 아예 발을 들여놓지 않는 게 좋은 구역 안에, 계속 그렇게 서 있었다. 나는 그 안에 있었다. 그도 그 안에 있었다. 나는 극도로 긴장하고 감정이 격앙된 상태라 정신이 와르르 무너져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 p.198
진짜 밀크맨이었다. 우리 지역에는 우유 주문을 받고 진짜 우유 트럭을 몰고 담당 구역에 우유를 배달하는 진짜 밀크맨이 있었다. 그 사람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남자이자 우리 구역 공식 상도를 벗어난 사람이기도 했다. 우리집에서 모퉁이를 돌면 있는 길에 살았는데 어느날 죽어가는 동생을 보러 ‘물 건너’ 나라에 갔다가 돌아와서 자기 집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리는 바람에 상도를 벗어난 사람이 되었다. - p.203
진짜 밀크맨은 시간이 흘러 그애들의 지식과 지적 모험에 대한 갈망이 더 커질수록 점점 힘들어질 거라는 투로 말했다. - p.213
우리 구역의 전통적인 여자들이 때로 미쳐버린 지경에 이른 정치적․지역적 문제를 끝내기 위해 일어나 본능적으로 단결할 때가 있긴 하지만, 이 일곱 여자는 ㅡ 울컥하여 반대자들에게 맞설 정도로 대담하기는 했으나 ㅡ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다수 집단을 형성할 능력이 없었다. - p.227
전통 여성들은 인내심의 한계에 부딪치면 통금을 깼다. 너무 지나치고 너무 과해서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서 터진 것이라, 어떤 남자들이건 어느 종교이건 물 어느 쪽이건 간에 규칙을 정하고 규정을 부과하고 본인들만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말도 안되는 어리석은 규칙을 따르기를 강요한다면 이 여자들은 가리지 않고 맞섰을 것이다. - p.228
진짜 밀크맨은 말끝을 흐리면서 이야기를 마쳤는데 아마 이 여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기도 잘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뒤에는 말없이 갔다. - p.235
밀크맨에 대한 생각이 나를 송두리째 사로잡았고 첫 세 번의 만남이 우연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우연이 아니었다는 게 이제는 명백했다. 밀크맨은 불쑥 나타나 나를 막아세우거나 내가 가는 길목을 지키고 서 있거나 내 앞이나 내 옆에서 나와 나란히 걷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일상적인 만남인 것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인 것처럼 이루어졌다. - p.238
밀크맨이 나를 혼란에 빠뜨리고 한계로 몰아가 내가 무너져 두 손 들고 자발적으로 자기 여자가 되어 차에 올라타게 만드는 공작을 시작한 이래로 나는 뭐가 있을 법한 일이고 뭐가 나의 상상인지 뭐가 현실이고 뭐가 착각이고 뭐가 피해망상인지 더 이상 확신할 수가 없었다. 무기력과 정신적 혼란을 점점 증폭시키는 게 밀크맨의 수법이라는 것도 몰랐다. - p.242
어떤 사람들에게는 진실을 말해줄 필요가 없다고 그때 이미 확실하게 믿었기 때문이다. 진실로 대할 만큼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진실을 받아들일 만큼 괜찮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따라서 거짓말을 하거나 사실을 생략하는 게 타당했다. 그게 마땅한 일이었다. - p.249
내 안에 있는 진짜 ‘나’가 내 얼굴에 지시를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내가 나를 도와줄 부하를 선택했다고 생각했지 나를 무시하고 하극상을 벌일 반역자를 선택했다는 생각은 못해봤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났다. 얼굴에서 일어났다. - p.250
밀크맨으로부터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사람들로부터는 자유롭고 안전해지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밀크맨만 발전한 게 아니라 나와 밀크맨에 대한 소문도 점점 발전하고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대비를 못했다. - p.251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불신, 밀고 당기기, 저격, 응사, 우회, 왜곡 등이 신체적으로도 에너지를 고갈시켰다. 사람들과 내가 최종 맞대결을 향해 멈추지 못하고 굴러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날마다 자기 전에 밀크맨이 숨어 있지 않은지 보려고 침대 밑, 문 뒤쪽, 옷장 안 등을 일일이 확인하고 커튼이 잘 닫혀 있는지 유리창 안이나 밖에 그가 숨어 있지는 않은지 살폈는데, 어느샌가 이제는 지역 사람들이 어딘가에 숨어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고 단속하는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사람들을 경계하고 피하는 데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했다. - p.253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무언가가 있고 또 무언가가 있는 것 같지만 아무것도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했다. 내가 삐딱하고 어긋나 있으며 사회적이지 않다고도 했는데, 이런 말로 조금 표현을 누그러뜨리긴 했다. - p.255
나와 밀크맨에 대한 쑥덕공론은 대부분 내 등 뒤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황이 정말 그렇게 나빴을까? 그때 내가 찾아가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 내 말을 들어주고 나를 위로해주고 지지해주고 보호해줄 사람이 정말 단 한명도 없었을까? 나를 나무라는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듯 나는 정말 십분 지역처럼 꽉 막히고 삐딱한 사람이었을까? - p.256
누가 내 말을 들어준다고 해도 이곳 사람들은 ‘쫓아다닌다’거나 ‘스토킹 한다’는 말에 익숙하지 않아 이해를 잘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성적으로 쫓아다니고 성적으로 스토킹 한다는 말뜻이 낯설다는 얘기다. 그 말들은 미국 영화에 나오는, 도로 가장자리로 천천히 차를 몰면서 여자를 물색하는 행동처럼 너무 이국적이고 여기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로 간주되었다. 이곳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아무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 p.259
직립 보행하는 늑대, 콧구멍을 벌렁거리고 귀는 크고 뾰족하고 앞다리 뒷다리는 칙칙한 털투성이에 이가 삐죽 튀어나온 주둥이에 길고 검은 발톱을 꿈틀거리고 혀를 놀리며 나를 지켜보라고, 나한테 가보라고, 나한테 자백을 받아내라고 언니를 부추기고 죽일 듯이 안달하는 남편. 하지만 첫째 언니는 죽은 애인 문제만으로도 너무 버거워서 자기 몸 하나 추스르기도 힘겨워한다는 게 누가 보기에도 빤했다. - p.260
인생은 짧고, 가끔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짧으니 공모를 했다거나 공범이라거나 이 지역 주민으로서 걸맞지 않은 행동을 했다는 비난을 스스로 초래할 이유는 없었다. - p.265~266
밀크맨과의 진짜 만남과 가사의 만남이 계속되는 한편 나는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루 종일 분투하고 있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가장 오래된 친구가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전갈을 보냈다. - p.276
나는 친구가 그를 ‘밀크맨 Milkman’이라고, 사람 이름을 부르듯이 대문자로 시작하는 밀크맨으로 불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다 소문자에 정관사가 붙은 ‘그 밀크맨 the milkman’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구역 꼬마들은 그 사람이 우유배달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친구가 그를 대문자 밀크맨이라고 부른다면 밀크맨이 그 사람의 이름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p.279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걸으면서 읽기도 그만두겠다는 말이 아니라 그것만 그만두겠다는 말이었다고 했다. 나를 쿡쿡 찌르고 질문을 던져 괴롭히는 사람들로부터 나를 지키려면 침묵과 부적응이 필요했다. - p.291
“이 성스러운 조각상의 감동적인 사진 말인데요. 여기 표현된 황홀경, 사색적이고 신비롭고 관능적이고 저에게는 달콤한 신음을 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과도하게 거슬리고 괴이쩍은 난교 같은 묘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말로ㅡ” - p.297
우리가 살던 아름다운 마을에서 내가 그자를 부추겼고 그자를 위해 흑마술을 부렸고 죽은 동물의 시신을 잘랐고 여자 스물세명과 자기를 살해하는 데 공범 노릇을 했다고 비난했다. - p.304
그러나 생각 없고 무책임한 접근으로는 이 조그마한 사람이 독을 넣는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리하여 추측이 계속 이어졌고, 추측은 반박되기도 반복되기도 했다. 독 살포도 계속되었는데 주로 금요일 밤 우리 구역 최고 인기 술집에서 춤판이 벌어질 때 그런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곳에 있을 때는 알약소녀를 잘 감시해야 했다. - p.306
서로 쿡쿡 찌르고 이쪽저쪽 돌아보고 알약소녀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으며 주의를 기울였고 알약소녀는 유령처럼, 끔찍한 악몽처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이렇게 사람들이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니 당연히 알약소녀를 성공적으로 저지하고 건강을 지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이 외로운 전사가 매번 승리했다. - p.308
친구는 독을 먹은 동생, 빛나는 소녀가 병원에 실려가야 할 정도로 심하게 중독되었고 사실 병원에 간다고 해결될 단계도 넘어섰다고 했다. 몸 대부분이 이미 땅속에 묻힌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중독되었다고 했다. 물론 병원에는 안 갔는데, 여기에서는 병원에 가는 것도 경찰을 부르는 것과 다를 바 없이 현명하지 않은 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 p.311
우리는 그때 잔을 비우고 술집에서 나왔고 나는 집에 가서 침대로 들어가 잠이 들었는데 그러다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내 방으로 휙 들어와 이불보를 타고 휙 올라오더니 벌어진 내 입으로 쑥 들어와 목구멍 깊이 파고드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나는 소스라쳐 잠에서 깨어 소리를 질렀다. “들어왔어! 안으로 들어왔어! 내가 자는 동안에 들어왔어!” 하지만 잠이 완전히 깨어나 내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자각하기도 전에 배 속에서 타는 듯한 느낌이 올라왔다. - p.312
내가 아는 세상이란 우라질 지옥, 우라질 지옥, 우라질 지옥이고 이 표현에 자세한 내용은 안 들어 있지만 이 표현 자체가 자세한 내용이다. - p.315
=== 읽고 난 뒤 : 물 건너, 길 이쪽, 끝, 시작 등등,,, 지명과 이름이 안 나오는데도 너무 읽기가 힘들다. 그러나 힘들고 어려운 건 나를 지적으로 뇌도 자극하는 거니 끝까지 갈렵니다.
읽어 갈수록 아직도 헤매고 있다. 현실과 착각 속에 진실과 거짓, 일상의 삶이 뒤섞이듯 하다. 누군가에 의해 삶이 조정 당하는 것과 같은 삶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 속에 소문도 발전하고 있다.
친구와 대화 중에 밀크맨의 존재에 대해서, 길을 걸으며 책을 읽는 것은 상도에서 벗어난 사람이고 낙인을 찍는 마을 사람들. 어디선가 나를 감시하고 있고 무방비 상태일 때 다가오고 사라지는 밀크맨.
밀크맨의 실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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