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익어가는 하루(필사)

남편 - 문정희

물빛향기 2020. 1. 5. 20:15

남편          -  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되지 하고

돌아 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 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는 남자

나에게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 준 남자

 

그렇지          - 정호승


남편한테 다른 이야기는 다 해도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는 하면 안 되지

그런 이야기를 하면 부부가 아니지

아버지만 외로운 게 아니라 남편도 외로운 시대에

아버지의 눈물만 한강을 이루는 게 아니라

남편의 눈물도 한강을 이루는 시대에

연애를 시작했더라도 짐짓 모른 척해야지

그 모순 속의 갈등을 이겨내야지

그래야 부부는 눈물이지

악연이 아니지

그래야 결혼도 외롭지 않지


--->  문정희 시인의 "남편"에 대한 정호승 시인의 답글 시.


=== 한 솥밥 먹는

한 이불 속에 있는

친구같은

웬수인가 했더니 사랑하는

악연 같은 인연이 된

잠 못 이루는 연애했던

세상에 제일 가깝고 제일 먼 아내.

사랑해!


매일은 못해도 가끔은 하는 나의 인생의 동반자인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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