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익어가는 하루(필사)

지평선 - 김혜순

물빛향기 2020. 2. 21. 21:13

지평선         - 김혜순

 

누가 쪼개 놓았나

저 지평선

하늘과 땅이 갈라선 흔적

그 사이로 핏물이 번져 나오는 저녁

 

누가 쪼개 놓았나

윗눈꺼풀과 아랫눈꺼풀 사이

바깥의 광활과 안의 광활로 내 몸이 가라진 흔적

그 사이로 눈물이 솟구치는 저녁

 

상처만이 상처와 스밀 수 있는가

내가 두 눈을 뜨지 닥쳐오는 저 노을

상처와 상처가 맞닿아

하염없이 붉은 물이 흐르고

당신이란 이름의 비상구도 깜깜하게 닫히네

 

누가 쪼개놓았나

흰 낮과 검은 밤

낮이면 그녀는 매가 되고

밤이 오면 그가 늑대가 되는

그 사이로 칼날처럼 스쳐 지나는

우리 만남의 저녁

 

    - <문학동네> 2004년 봄호 1시집<당신의 첫>(문학과 지성사, 2008)



===

지평선 / 하늘 = 땅 / 흔적 = 핏물 / 윗눈꺼플 = 아랫눈꺼플 / 바깥 = 안 /

흰낮 = 검은 밤 / 여 - 매 = 남 - 늑대  ▶▶▶ 우리 만남의 저녁


2 + 1 = 1  ▶▶▶ 둘이 하나되는 아픔

시(詩) 속에 둘이 하나되는 아픔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장석주 시인의 말  :  "언어가 언어 이전의 상태로 몸을 떠다니다가 언어화 하는 것"

"시(詩)란 내 몸의 전해질이 어떤 전극의 상태를 띨 때 씌어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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