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익어가는 하루(필사)

잊자 - 장석주

물빛향기 2020. 2. 23. 22:26

잊자               - 장석주

 

그대 아직 누군가 그리워하고 있다면

그대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대 아직 누군가 죽도록 미워하고 있다면

그대 인생이 꼭 헛되지만은 않았음을

위안으로 삼아야 한다

 

그대 아직 누군가 잊지 못해

부치지 못한 편지 위에 눈물 떨구고 있다면

그대 인생엔 여전히 희망이 있다

 

이제 먼저 해야 할 일은

잊는 것이다

 

그리워하는 그 이름을

미워하는 그 얼굴을

잊지 못하는 그 사람을

모두 잊고 훌훌 털어버리는 것이다

 

잊음으로써 그대를

그리움의 감옥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잊음으로써 악연의 매듭을

끊고 잊음으로써 그대의 사랑을

완성해야 한다

 

그 다음엔 조용히 그러나 힘차게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 시집<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세계사, 1998)

 

===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다면,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다.

또한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하고 있다면,

인생은 헛되게 살지 않았음을 위안삼고 살기 바란다.

그리워하는 그대를,

미워하는 그 얼굴을,

잊지 못하는 그 사람을,

모두 훌훌 털어버리고 살고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다시 일어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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