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신영복) 읽고 발췌 - 12
19. 글씨와 사람 (p.306~321)
「서도의 관계론」 = 관계
서재에는 서첩, 법첩도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내게는 미불(米芾)을 쓰라고 하시면서 법첩을 주셨습니다. 나는 선생님이 주신 미불 법첩을 시작으로 일본에서 발간된 미불 서첩을 따로 들여왔습니다. 미불의 모든 글씨가 망라된 서첩입니다. 흔히 미불은 배우지 말라고 합니다. 배우다 중도에 그만두면 아무 쓸모가 없다고 하는 글씨이기도 합니다. (중략) ‘행림회춘(杏林回春)’이라고 썼습니다. 살구나무 숲에 봄이 돌아왔다는 뜻입니다. 아마 한의학 하는 분들은 ‘행림’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오(吳)나라에 동봉(董奉)이라는 의사가 살았는데, 이분은 어려운 사람들을 치료해 주고 치료비 대신 살구 씨 하나를 뒷산에 심고 가게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구 씨를 심었으면 세월이 지나 뒷산이 살구나무 숲이 되었습니다. 그 살구나무 숲에 봄이 돌아왔다는 뜻입니다. 행림회춘, 아름다운 정경입니다. - p.310
추사가 이삼만(李三晩)의 글씨를 관솔불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관솔불 냄새란 관솔로 불을 켤 때 나는 냄새입니다. 가난한 시골 선비가 비싼 양촛불 켜고 글공부할 수가 없어서 관솔불을 켜고 공부했습니다. ‘관솔’은 소나무 옹이입니다. 기름이 많아서 불을 켤 수 있습니다. 글씨에 관솔불 냄새가 배어 있다는 것은 시골 선비의 글씨를 비하하는 말입니다. - p.311
궁체는 궁녀들이 쓰던 글씨체입니다. 그래서 ‘궁체(宮體)’라고 합니다. 궁녀는 그 사회의 최상층 문화를 향유하는 계층이기 때문에 미적인 감각도 대단히 귀족적입니다. 글씨의 하부가 가늘고 전체적으로 정적인 분위기를 풍깁니다. 이런 궁체의 귀족적 형식은 민중시나 민요와 같은 서민 정서와 조화되기 어려웠습니다. - p.312
정향 선생님께 배운 전篆 ․ 예隸 ․ 해諧 ․ 행行 ․ 초草의 풍부한 필법을 한글에 도입합니다. 한문 서예의 획과 필법은 한글 글씨와는 판이합니다. 한글은 전문 용어로 노봉(露鋒)에 측필(側筆)입니다. 곱게 긋기만 하면 됩니다. 한자는 기본적으로 장봉(藏鋒), 중봉(中鋒)에 역입역출(逆入逆出)에 파(波)가 있기도 하고, 체에 따라 획과 필법이 다양합니다. 나는 내가 이미 익히고 있는 한자의 다양한 필법을 한글에 가지고 오는 것과 동시에 궁체나 판본체의 결구도 깨뜨렸습니다. - p.313
서도의 관계론은 서도의 미학이 ‘관계’를 중시한다는 뜻입니다. 우선 서도는 서양에는 없는 장르입니다. 서양에는 캘리그래피, 펜맨십이란 개념이 있지만 그것을 서도와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글자의 조형미 이상이 못 됩니다. 서도의 미학이라는 것은 형식미에 국한된 것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하여 ‘관계론’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愚公移山(우공이산) - p.314
서도의 관계론은 획(劃), 자(字), 행(行), 연(聯)의 조화에 그치지 않습니다. 최종적으로는 흑과 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아무리 잘 쓴 글씨라 하더라도 큰 종이에다가 터무니없이 조그맣게 쓴 것이라면 그건 글씨도 아닙니다. 종이는 작은데 전직 대통령처럼 크게만 쓰면 그것도 말이 안 됩니다. 흑과 백의 조화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 p.315
민주적이고 서민적인 정서가 사회의 주조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시조, 별곡, 성경, 불경 등을 궁체로 쓰고 있다는 것 자체는 일단 서여(書如)가 못 됩니다. 그런 점에서 서도의 관계론은 그 의미가 중층적입니다. 내용과 형식, 시대와 아포리즘, 이런 것들에 대한 고민을 저버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 p.317
‘서울’을 쓰자. ‘서’ 자는 북악산, ‘울’ 자는 한강으로 쓰자. 그러고는 여러 가지로 시필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산을 그려서 ‘서’ 자로 만들고 ‘울’ 자를 강물처럼 썼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다 한시 한 수를 방서로 썼습니다.
北岳無心五千年(북악무심오천년) 漢水有情七百里(한수유정칠백리)
“북악은 5천 년 동안 무심하고, 한수는 유정하게 700리를 흐른다.” 북악과 한수, 무심과 유정, 5천 년과 700리가 대(對)가 되도록 했습니다. 북악은 왕조 권력을, 한수는 민초들의 애환을 상징해서 썼다고 해설에서 밝혔습니다. 왕조 권력은 권력 투쟁에 몰두하여 백성들의 애환에 무심하지만 한강 물은 민초들의 애혼을 싣고 700리 유정하게 흘러간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 p.318
서도에서 더 중요한 것은 환동(還童)입니다.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순수합니다. 전 시간에 대교약졸(大巧若拙)을 소개하면서 최고의 기교(大巧,대교)는 졸렬한 듯하다(若拙,약졸)고 했습니다. (중략) 기교라는 것은 반자연(反自然)입니다. 최고의 기교란 졸렬한 듯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뜻입니다. - p.319
글씨도 사람과 같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나름 산전수전을 겪어 왔습니다. 글씨 보는 안목은 그렇지 못할지 모르지만 사람을 보는 안목은 상당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목구비나 언행이 반듯하고 패션 감각이 뛰어난 그런 사람이 아마 좋아 보였을지 모르지만 지금쯤은 생각이 상당히 달라졌으리라고 봅니다. 어리숙하고 어눌하더라도 어딘가 진정성이 있는 점을 더 높이 평가하고 있을 것입니다. 글씨도 같습니다. 환동, 어린이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렇습니다. 자기를 드러내려는 작위(作爲)가 개입되면 그 격이 떨어집니다. 인위적인 것은 글자 그대로 위(僞)입니다. 거짓이 됩니다. - p.320
예로부터 명필은 장수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명문장 중에는 요절한 사람이 많습니다만 명필은 오래 살아야 된다고 합니다. 오래 사는 것만큼 세상을 달관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산전수전을 다 겪엇 사물과 인간에 대한 무르익은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 훌륭한 글씨를 쓸 수 있다는 뜻입니다. - p.321
20. 우엘바와 바라나시 (p.322~345)
인문학 = 세계와 인간에 대한 공부
감옥 : 내 인생에 있어서 여행, 길고 뜻 깊은 여행, 빈 몸으로 떠난 여행, 하던 일과 부모형제 친지들을 칼같이 자르고 어느 날 기약 없이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이란 떠나는 것이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고, 자기의 성(城)을 벗어나는 것이 여행의 가장 첫 번째 의미입니다. 그다음이 ‘만나는 것’입니다. 자기를 떠나지 않고는 새로운 것을 만나기도 어려운 법입니다. - p.323
감옥은 굉장한 여행이었습니다. 자기를 완벽하게 비워야 했고, 그만큼 혹독한 여행이었고, 그만큼 충격적인 만남으로 채워진 여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행은 떠나고 만나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종착지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 변화된 자기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비단 여행에서만 확인되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하면 여행만 여행이 아니라 우리의 삶 하루 하루가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통과 변화는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의 존재 형식입니다. 부단히 만나고, 부단히 소통하고, 부단히 변화하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중략) 떠남과 만남과 돌아옴 중에서 가장 결정적인 것은 만남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만남 그리고 자기와의 만남입니다. 떠나는 것도 그것을 위한 것입니다. - p.323~324
춘풍추상(春風秋霜) : 봄바람과 가을 서리라는 뜻입니다.
‘대인춘풍(待人春風) 지기추상(持己秋霜)’ : 남을 대하기는 춘풍처럼 관대하게 하고, 반면에 자기를 갖기는 추상같이 엄격하게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대체로 반대로 합니다. 자기한테는 관대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까다로운 잣대로 평가합니다. - p.324
여행은 ‘돌아오는 것’입니다. 떠나고 만나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 전 과정이 자기 변화로 이어지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것은 아무리 멀리 이동하고 아무리 많은 것들을 만났더라도 진정한 여행은 아닙니다. (중략) 해외 기행의 첫 번째 방문지가 콤럼버스가 출항한 우엘바 항구였습니다. 지브롤터 해협 가까이에 있는 작은 항구입니다. 잊힌 항구입니다. … 모형으로 만든 산타마리아 호 세 척만 파도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 p.329
자본의 유입은 자본의 상대적 과잉이 되고 노동력의 유출은 노동력의 부족으로 이어져 자본과 노동의 계급 타협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 계급 타협이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중산층 중심의 다이아몬드형 사회 구성이 가능한 것이 바로 콜럼버스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331
콜럼버스 이후 지금까지의 세계 질서는 본질에 있어서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유럽의 근대사는 한마디로 나의 존재가 타인의 존재보다 강한 것이어야 하는 강철의 논리로 일관된 역사였습니다. 이러한 논리를 모든 나라들이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 p.336
세계화는 콜럼버스의 세계화입니다. 오늘날도 콜럼버스는 살아 있습니다. 콜럼버스 개인에게는 야박하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개인이 아닙니다. 콜럼버스는 험한 파도와 사투를 벌인 한 사람의 바다 사나이일 뿐이라 할 수 있지만 그는 근대사회의 아이콘입니다. 콜럼버스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오늘날도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고 이 발상의 전환을 강조하는 예로서 반드시 콜럼버스가 등장합니다. - p.337
콤플렉스는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서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발견하려고 합니다. 자기의 하위에 그 사람을 배치함으로써 자신의 콤플렉스를 위무하려는 심리적 충동으로 기울기 쉽습니다. - p.339
여행은 떠남, 만남, 그리고 돌아옴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자기를 칼같이 떠나는 것입니다. -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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