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신영복) 읽고 발췌 - 14 = 끝
23. 떨리는 지남철 (p.398~409)
하일리의 일몰에 관한 이야기로 이 글은 시작됩니다. ‘하일리’의 ‘하’가 노을 하(霞)자입니다. 강화에서 맞는 서해의 일몰은 하염없는 감회를 안겨줍니다. 온 바다를 물들이며 물 밑으로 가라앉는 일몰 광경은 검은 능선을 넘어 사라지는 산마루의 일몰과는 판이합니다. ‘저 해가 물 밑으로 가라앉지만 내일 아침에 다시 바다 위로 솟아오르겠구나’ 하는 확신을 안겨 주기 때문입니다. - p.398
양명학의 핵심은 ‘심즉리(心卽理)입니다. “마음이 진리”라는 것입니다. 주체성의 선언입니다. 주자학에서는 성즉리(性卽理)였습니다. 성(性)이라는 것은 하늘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心)은 객관적으로 주어진 천명(天命), 천성(天性), 천리(天理)가 아니라 인간의 주체적인 실천이 진리를 담보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후사건적(後事件的) 실천이 진리를 담보한다는 알랭 바디우를 연상케 합니다. (중략) 양명학의 3강령은 심즉리, 치양지(致良知), 지행합일(知行合一)입니다. 치양지는 양지(良知)를 다한다는 뜻입니다. 양명학에서는 심(心)을 양지로 보고 그 자체를 선량한 것으로 승인합니다. 맹자의 성선설과 맥을 같이합니다. 모든 사람이 양지를 갖추고 있다는 것은 사민(四民) 평등사상입니다. - p.400
지행합일은 양명학의 중요한 덕목입니다. 주자학은 지(知)와 행(行)을 선후 관계로 놓습니다. 선지(先知), 먼저 알고 후행(後行), 나중에 행하는 도구입니다. 독서궁리(讀書窮理), 즉 책을 읽음으로써 진리에 도달한다는 논리입니다. 양명학에서는 독서가 진리에 도달하는 길이 아닙니다. 지(知)와 행(行)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독서로 할 것이 아니라 일상샐활을 통해서 삶의 현실 속에서 진리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 p.401
그러나 지식인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품성을 한 가지만 말하라고 한다면 단연 ‘양심적인 사람’입니다. 양심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인간학일 뿐 아니라 그 시대와 그 사회를 아울러 포용하는 세계관이기 때문입니다. - p.405
학생운동이란 그런 것인가 하는 회의마저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깨달은 것이지만 그 당시에는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꾸준히 그 길을 지키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중량) ‘양심적인 사람’은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매우 낮습니다. 낮을 뿐 아니라 부정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양심적인 사람이야말로 가장 강한 사람이며 가장 인간적인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식인이란 모름지기 양심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 이외의 역량은 차라리 부차적인 것이라 해야 합니다. - p.408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그 바늘 끝을 떨고 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기에게 지니워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사를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서 좋다.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 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영규 교수의 글) - p.409
24. 사람의 얼굴 (p.410~418
「사람의 얼굴」은 자기의 사상을 어떻게 키워 가야 할 것인가에 관한 고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무엇이 그 사람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빙산은 바닷속에 더 큰 몸체를 묻어 놓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사상도 글이나 말로 표현된 것 보다는 더 깊숙한 곳에 그것의 뿌리가 있습니다. 자기가 분명하게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생각과 언설 속에 무의식중에 녹아 들어가는 그러한 정신적 연원이 있습니다. - p.410
프로이드(Sigmund Freud)가 말하는 잠재의식(= 연상세계)입니다. 잠재의식이 인간 의식의 9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자기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그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입니다. -p.411
연상세계란 독방에 앉아서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생각하면 연상세계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희로애락으로 점철된 우리의 삶 그 자체였습니다. 그것이 추억이 되고 연상세계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연상세계를 심는 일은 독방에서는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 p.413
나는 ‘나’의 정체성이란 내가 만난 사람, 내가 겪은 일들의 집합이라고 생각합니다. 만난 사람과 겪은 일들이 내 속에 들어와서 나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과 일들로부터 격리된 나만의 정체성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나는 관계다’를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독방은 내게 최고의 철학 교실이었습니다. - p.415
사람이란 누구나 누구의 친구이고 누구의 가족일 터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사고 속에 계속 친구나 가족으로 남아 있는 한 우리의 사고가 주관적 감상에 기울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 돌이켜보면 우리의 삶은 어차피 절친한 친구들로부터 출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p.417
25. 희망의 언어 석과불식 (p.419~끝)
석과불식(碩果不食) = 『주역』 산지박(山地剝)괘의 효사에 나오는 말입니다. 산지박괘는 산이 위에 있고 지(地)가 아래에 있는 괘입니다. 이 괘의 이름이 박(剝)입니다. 빼앗긴다는 뜻입니다. - p.419
석과불식은 바로 이 마지막 하나 남은 양효의 효사에 나오는 말입니다. 석과불식은 “씨 과실을 먹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 석과(碩果)는 ‘씨 과일’이란 뜻입니다. 가지 끝에 마지막 남은 감은 씨로 받아서 심는 것입니다. … “씨 과실을 먹지 않는 것”은 지혜이며 동시에 교훈입니다. 씨 과실은 새봄의 새싹으로 돋아나고, 다시 자라서 나무가 되고, 이윽고 숲이 되는 장구한 세월을 보여줍니다. 한 알의 외로운 석과가 산야를 덮는 거대한 숲으로 나아가는 그림은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찹니다. 역경을 희망으로 바꾸어 내는 지혜이며 교훈입니다. - p.420
첫 번째는 엽락(葉落)입니다. 잎사귀를 떨어뜨려야 합니다. 잎사귀는 한마디로 ‘환상과 거품’입니다. 엽락이란 바로 ‘환상과 거품’을 청산하는 것입니다. 『논어』의 불혹(不惑)과 같은 뜻입니다. 우리는 『논어』의 사십불혹(四十不惑)을 나이 마흔이 되면 의혹이 없어진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 혹은 의혹(疑惑)이 아니라 미혹(迷惑)이고 환상(幻想)입니다. 가망 없는 환상을 더 이상 갖지 않는 것이 불혹입니다. 그것이 바로 거품을 청산하는 단호함입니다. (중략)
두 번째는 체로(體露)입니다. 엽락 후의 나무는 나목(裸木)입니다. 잎사귀에 가려져 있던 뼈대가 훤히 드러납니다. 『운문록(雲門錄)』의 체로금풍(體露金風)입니다. 칼바람에 뼈대가 드러납니다. 나무를 지탱하는 구조가 드러납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바로 구조와 뼈대를 직시하는 일입니다. 환상과 거품으로 가려져 있던 우리의 삶과 우리 사회의 근본적 구조를 직시하는 일입니다. 뼈대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정치적 자주성입니다. 둘째 경제적 자립성입니다. 셋째 문화적 자부심입니다. 개인이든 사회든 국가든 뼈대를 튼튼하게 해야 합니다. 뼈대란 우리를 서 있게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분본(糞本)입니다. 분(糞)은 ‘거름’입니다. 분본이란 뿌리(本)를 거름(糞)하는 것입니다. 낙엽이 뿌리를 따뜻하게 덮고 있습니다. … 뿌리가 곧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은 그 자체가 최고의 가치입니다.
엽락과 체로에 이어 우리의 할 몫이 분본입니다. 뿌리를 거름하는 일입니다. 뿌리가 바로 사람이며 사람을 키우는 것이 분본입니다. - p.420~421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은 것은 거름하고 키우고 기다리는 일을 불필요하고 불편하게 여기는 우리들이 정작 잃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한 것입니다. 사람을 거름하기는커녕 도리어 ‘사람으로’ 거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해고와 구조 조정 그리고 비정규직이 바로 사람으로 사람을 거름하는 것입니다. (중략) 사람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드는 일입니다. 사람은 다른 가치의 하위 개념이 아닙니다. 사람이 ‘끝’입니다. 절망과 역경을 ‘사람’을 키워 내는 것으로 극복하는 것, 이것이 석과불식의 교훈입니다. - p.422
산지박괘의 다음 괘가 지뢰복(地雷復)괘입니다. 땅 밑에 ‘우레’가 묻혀 있습니다. … ‘복(復)’은 다시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광복절(光復節)의 복(復)입니다. 산지박이라는 절망의 괘가 지뢰복이라는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집니다. 절망의 괘가 희망의 괘로 이어집니다. 엽락, 체로, 분본의 과정을 거쳐서 석과는 이제 새싹이 되고, 나무가 되고, 숲이 됩니다. 절망의 언어가 희망의 언어로 비약합니다.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해 왔던 옛사람들의 철학입니다. (중략) ‘석과불식’은 한 알의 작은 씨 과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한 알의 씨 과실은 새봄의 싹이 되고 나무가 되고 숲이 되는 장구한 여정으로 열려 있는 것입니다. - p.423
여러분에게 두 가지를 당부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에 관한 것이며, 또 하나는 먼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드리는 길채비의 말씀입니다. - p.424
내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가 햇볕이라고 한다면,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하루하루의 깨달음과 공부였습니다. 햇볕이 ‘죽지 않은’ 이유였다면, 깨달음과 공부는 ‘살아가는’ 이유였습니다. 여러분의 여정에 햇볕과 함께 끊임없는 성찰이 함께하기를 빕니다. - p.425
‘독버섯’은 사람들의 ‘식탁의 논리’입니다. 버섯을 식용으로 하는 사람들의 논리입니다. 버섯은 모름지기 ‘버섯의 이유’로 판단해야 합니다. ‘자기의 이유’, 이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자기의 이유’를 가지고 있는 한 아무리 멀고 힘든 여정이라 하더라도 결코 좌절하지 않습니다.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를 줄이면 ’자유(自由)‘가 되기 때문입니다. - p.426
언약(言約)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 신영복
=== 언약을 강물처럼 흘려보내고, 각자의 삶의 길목에서 꽃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상) 신영복 교수의 담론을 시간은 흘려 끝까지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읽기 힘들게 넘어 왔는데, 함께 읽다보니 끝으로 왔네요.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작은 ‘행복’을 붙잡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가가며,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강물처럼 흘려가는 삶의 길목에서 꽃으로 피어나는 자부심을 갖고 걸어야겠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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