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신영복) 읽고 발췌 - 13
21. 상품과 자본 (p.346~377)
「상품과 자본」「우엘바와 바라나시」
우엘바는 20세기 이르기까지의 근대사회 전개 과정을 추적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라나시는 21세기의 전망을 인도의 정신과 연결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탈근대의 과제를 우엘바와 바라나시를 서로 대비하는 형식으로 조명한 셈입니다. … 「상품과 자본」은 「우엘바와 바라나시」의 속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346
자본주의 사회는 우리의 삶이 영위되는 무대이면서, 그 체제 속의 사람들을 재구성하는 공작실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상품과 자본」은 인간과 세계를 아울러 바라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엘바와 바라나시」 그리고 「상품과 자본」으로 이어지는 강의 진행 과정이 이해 될 수 있기 바랍니다. - p.347
문제는 부부 관계마저도 상대적 가치형태로 인식한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적 가치로서 판단하지 않고 있는 우리의 의식 형태입니다. 그리고 하필이면 ‘친정이부자인가보다’라는 생각입니다. 가장 인간적이어야 할 인간관계마저도 화폐가치로 인식하고 있는 우리의 천민적 사고입니다. - p.350
사람들의 삶의 정서를 담아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구매욕을 자극하기 위한 디자인에 몰두합니다. 결국 지금까지 친숙한 것은 상품미학에서 배격됩니다. 새로운 것이라야 됩니다. - p.354
새로운 물건은 항상 배를 타고 해외에서 왔습니다. 최종적인 결정은 바깥에서 이루어집니다. 모름다움의 권력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패션이라는 이미지의 변화가 사회 변화를 대체한다는 사실입니다. (중략) 상품사회는 이처럼 상품 ㅡ 화폐 구조 속에 우리를 가둠으로써 인간적 정체서을 소멸시킬 뿐 아니라 우리들의 미적 정서 그 자체를 역전시킵니아. 그리고 변화 그 자체를 이미지화함으로써 현실의 개혁과 진정한 변화의 열정을 소멸시키고 있습니다. - p.355
내 경우에는 독서가 이제는 상품이 되어 있습니다. 감옥에 있을 때 독서는 상품 생산이 아니었습니다. 읽기 싫은 것은 읽지 않아도 그만이었습니다. 지금은 팔기 위해서 독서합니다. 읽기 싫은 것도 읽습니다. 이처럼 상품은 끊임없이 증가하고 상품문맥은 점점 더 강고해집니다. (중략) 상품이 아름답고 소비가 행복의 내용이 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사는 것은 사는 것이다.”(Livong is shopping)라는 농담이 있습니다. - p.356
인간의 정체성은 인간관계에 의해서 만들어집니다. 아픔과 기쁨도 사람으로부터 옵니다. 돌이켜보면 가장 통절한 아픔이나 가장 뜨거운 기쁨은 사람으로부터 왔다고 기억됩니다. - p.357
인간관계의 상실이 주는 아픔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압도적인 부분이 사람들과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관계야말로 궁극적 존재성입니다. - p.358
행복에 대해서도 전문가의 철학적 처방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에피쿠로스의 행복은 우주, 자유, 오후의 햇살 등입니다. 그중에는 ‘갓 구워낸 빵’도 있습니다, - p.359
생산물로부터의 소외입니다. 나는 의자를 머리 위로 치켜들고 벌 받고 있는 그림을 자주 보여줍니다. 소외의 전형적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의자를 만들 때는 그 위에 편히 앉으려고 만듭니다. 그런데 그것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서 있다는 것은 역설의 극치입니다. 자기가 만든 생산물로부터의 소외입니다. - p.365
“지(知)란 무엇인가?” - 지인(知人) - ‘사람을 아는 것’이 지(知)라는 답변입니다. 최고의 인문학입니다. 공자의 정의에 따른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 중에서 대부분의 지식은 지(知)가 아닙니다. - p.369
22. 피라미드의 해체 (p.378~397)
반구정(伴鷗亭)과 압구정(狎鷗亭) = 반(伴)과 압(狎) ☞ 벗한다는 뜻입니다.
압구정은 압구정동으로 유명합니다. 세조(世祖)때의 모신(謀臣) 한명회(韓明澮)의 아호(雅號)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또 지금은 정자인 압구정이 없습니다. 당시 한강 건너편에다 정자를 짓는 다는 것도 남다른 발상이었습니다. 반구정은 황희(黃喜) 정승이 퇴은하고 노후를 즐기던 정자입니다. 황희 정승은 세종(世宗) 치하 24년을 정승으로 지냅니다. 그중 19년을 영상 직에 있었습니다. 87세에 간신히 사작하고 90세에 별세합니다. 세종보다 오래 살았습니다. 반구정에서 노후를 오래 즐기지는 못했으리라 짐작됩니다만 황희 정승의 장수와 마찬가지로 반구정은 지금도 건재합니다. 압구정이 현대아파트 72동 옆에 유허지(遺虛地)임을 알리는 표석으로 남아 있는 데 비해서 황희 정승의 정자인 반구정은 지금도 임진강 갈매기들을 벗하며 여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 p.379
조선조에는 두 개의 정치 체제가 있습니다. 의정부 중심제와 절대군주입니다. 황희 정승이 의정부 중심제를 대표하고, 한명회가 절대군주제를 대표하는 것으로 대비하고 있습니다. 의정부 중심제는 수평적 질서로서 주(周)나라 정치 제도라고 하는 반면에 절대군주는 수직적 권력 구조로서 진(秦)나라 정치 제도라고 합니다. 조선조는 이 두 개의 정치 체제가 교차합니다. 초기와 후기에 그 선호의 주체가 바뀝니다. 조선조 초기 의정부 중심제를 주장하던 개혁 사림파가 나중에는 절대군주제를 지지하고, 절대군주제를 지지하던 훈구 척신 세력이 나중에는 의정부 중심제를 고수합니다. - p.381
조선 건국은 건국의 주체들이 열린 사고를 가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1394년에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이 만들어졌는데 그것의 기본 정신이 입헌군주제였습니다. 세계사적으로도 매우 앞선 정치 체제였습니다. 신진 관료들의 성리학도 상당히 진보적 사상이었습니다. 성리학은 조선 후기에 교조화되고 그것이 국망(國亡)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과도하게 폄하됩니다만, 성리학은 성명의리지학(性命義理之學)으로서 양심 문제를 중심에 두는 중소 재지지주의 정치사상입니다. 중소 재지지주는 부재지주(不在地主)와 달리 농민들의 현실을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과도한 침학을 자제하고 절제와 겸손의 문화를 만들어 갑니다. - p.385~386
황희와 한명회, 압구정과 반구정 그리고 조선 시대의 정치 체제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조선 중기가 되면 군약신강 구조로 바뀝니다. 신하가 강하고 군주가 약해집니다. 훈구 척신 세력이 그만큼 강해집니다. 약한 군주가 신하를 통제하는 방법이 당쟁입니다. 신하들을 분할 통치하는 방식입니다. 숙종(肅宗)이 이 시기의 대표적 임금입니다. 환국(換局)이라는 형식으로 당파들을 견제합니다. 기사환국, 갑술환국 등 조선 중기 정치의 기본이 환국입니다. - p.393
반구정과 압구정의 남아 있는 모습이 그대로 역사의 평가는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의 차이가 함의하는 언어를 찾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해체해야 할 피라미드는 과연 무엇인지, 우리가 회복해야 할 땅과 노동은 무엇인지를 헤아려야 할 것입니다. 압구정이 콘크리트 더미 속 한 개의 작은 돌멩이로 왜소화되어 있음에 반하여 반구정은 유유한 임진강가에서 이름 그대로 갈매기를 벗하고 있습니다. - p.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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