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끓이며 (김훈, 문학동네) - 2
바다 - 동해
아침마다 죽변항은 고기 잡고, 고기 팔고, 고기 사는 사람들의 살림의 활기로 북적거렸다. 어선들은 위판장 시멘트 바닥에 막 잡아온 생선을 부렸고, 생선들이 펄떡거릴 때 비늘에서 아침햇살이 튕겼다. 갈매기들이 떨어진 게 다리나 생선 내장 부스러기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먹고살기 바쁘기는 사람이나 갈매기나 별 차이 없었다. 노련한 선원들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작업의 손발을 맞추었고, 동료의 작업이 편안하도록 자신의 동작을 받쳐주었다. (p.52)
물곰국은 인간의 창자뿐 아니라 마음을 위로한다. 그 국물은, 세상잡사를 밀쳐버리고 우선 이 국물에 몸을 맡기라고 말한다. 몸을 맡기고 나면 마음은 저절로 몸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위안의 기능을 갖는다는 점에서, 물곰국은 하나의 완연한 세계를 갖는다. 이런 국물은 이 지구상에 울진 말고는 없다. 물곰의 살은 모든 짐승의 고기가 갖는 육질의 짜임새가 없다. 물곰의 살은 근육도 아니고 국물도 아닌 그 완충의 자리에서 흐느적거린다. 그 살은 씹어 삼키는 살이 아니라 마시는 살이다. 이 완충의 흐느적거림이 인간을 위로한다. 물곰 살을 넘길 때, 생선의 살이 인간의 살을 쓰다듬는다. 그 살은 생명 발생 이전의 원형질과도 같은 맛이다. 물곰은 혀로 느껴지는 맛과 목구멍을 넘어가는 촉감이 일치한다. (p.57)
■ 문장분석
-동해바다 죽변항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비늘에서 아침햇살이 튕겼다’라는 표현이 아름답네요. ‘튕겼다’가 묘사가 색다릅니다.
-‘갈매기들이 떨어진 게 다리나 생선 내장 부스러기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갈매기들도 먹고 사는 문제가 고단하겠구나 느껴집니다.
-‘노련한 선원들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작업의 손발을 맞추었고, 동료의 작업이 편안하도록 자신의 동작을 받쳐주었다.’ 선원들의 작업활동이 그려지는 문장입니다.
-‘자신의 동작을 받쳐주었다.’는 작가의 시선이 남다릅니다. 보통은 동료의 작업이 편안하도록 ‘도왔다’. 이렇게 쓸 수도 있는데 말이죠. 관찰력이 뛰어나다는 게 이런 문장에서 드러납니다.
-두 번째 문단은 김훈 작가가 물곰국으로 아침을 먹으면서 사유한 내용입니다.
-‘물곰국은 하나의 완연한 세계를 갖는다.’며 울진에서 맛보는 물곰국에 대한 찬사가 적혀있습니다.
-‘물곰국은 인간의 창자뿐 아니라 마음을 위로한다.’ 인간의 마음까지 위로한다는 사유가 넉넉합니다.
-인간의 마음을 위로하는 음식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게 합니다.
-‘물곰 살을 넘길 때, 생선의 살이 인간의 살을 쓰다듬는다.’ 물곰국을 먹으며 끊임없이 생각하는 작가의 예리함이 넘칩니다. 생선살이 인간의 살을 쓰다듬는다뇨... 캬 (소주를 마셔야겠습니다.)
-나를 위로하는 음식에 관한 에세이를 쓰셔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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