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끓이며 (김훈, 문학동네) - 5
남태평양
나에게 여행은 세계의 내용과 표정을 관찰하는 노동이다. 계절에 실려서 순환하는 풍경들, 노동과 휴식을 반복하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 지나가는 것들의 지나가는 꼴들, 그 느낌과 냄새와 질감을 내 마음속에 저장하는 것이 내 여행의 목적이다. 나는 여행할 때 늘 성능 좋은 망원경을 두어 개 가지고 간다. 롱샷으로 크고 먼 풍경을 넓게 관찰하는 망원경이 있고 하나의 포인트를 가깝게 당겨서 들여다보는 망원경도 있다. 바다로 막히고 길이 끊어져서 갈 수 없는 저편의 노을과 구름, 숲으로 가는 새들, 갯벌에서 무언가를 줍는 사람들, 썰물에 갇힌 낡은 어선들, 선착장 쓰레기통에 쌓인 소주병들, 노는 아이들과 개들, 물가에 오랫동안 혼자 앉아 있는 늙은 여자를 나는 망원경으로 관찰한다. 망원경 속에서, 생활은 영원하다. 저물어서, 늙은 농부가 경운기를 몰아 집으로 돌아갈 때 나는 느낌으로 가득 차서 여관으로 돌아간다. 내 느낌은 대부분 언어화되지 않는다. (p.77)
열대 바다의 저녁은 저무는 해의 잔광이 오랫동안 하늘에 머물러서, 색들은 늦도록 수면 위에서 흔들리고 별들은 더디게 돋는다. 어둠으로 차단된 수억 년의 시공 저편을 별들은 건너온다. 별은 보이지 않고 빛만이 보이는 것인데, 사람의 말로는 별이 보인다고 한다. 크고 뚜렷한 별 몇 개가 당도하면 무수한 잔별들이 쏟아져 나와 하늘을 가득 메운다. 별이 없는 어둠 속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눈이 어둠에 젖고 그 어둠속에서 별들은 무수히 돋아난다. 별이 가득 찬 하늘에서는 내 어린 날의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린다.(p.83)
● 강경 황산 포구 등대(2019. 8. 14, 금강자전거길에서)
충남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
“나에게 여행은 세계의 내용과 표정을 관찰하는 노동이다.” “나는 여행할 때 늘 성능 좋은 망원경을 두어 개 가지고 간다.” 라는 김훈 작가의 말에 동의하면서 나는 자전거 여행할 때 무얼 챙겼는가? 카메라 대신 핸드폰, 우비, 노트, 자전거(정비도구), 옷, 자전거 등을 챙겼다.
올해는 풍경을, 온전한 휴식을, 순간순간의 느낌들을 기록해 보도록 해야겠다. 지금까지는 거의 내 마음 속에 풍경을, 느낌들을 저장했는데, 앞으로는 종이에 기록하며 내 느낌을 언어화하는 작업을 해야겠다.
강경은 ‘강경이’ 또는 ‘갱갱이’로 불렸다. 강의 가장자리 라는 뜻으로, 약 30여 년 전까지만 강경 포구까지 배가 들어왔으며, 강가에는 등대가 복원되어 있다. 강경포구는 원산과 함께 조선의 2대 포구로 성장했었고, 객주 중심으로 수산물 시장이 발달했고, 강경과 평양, 대구가 전국 3대 시장의 하나로 번성했다고 한다.
강경포구는 100년 전부터 큰 배가 들어 온 물길이고, 금강에서 주목받던 포구였으며, 물자가 팔리는 곳으로 사람이 몰리면서 큰 장이 열렸고, 또한 5일장으로 연결되면서 장꾼들이 붐볐다고 한다.
강경 황산 포구 등대는 번성했던 옛 강경의 향수와 자긍심을 고취하기 일한으로 철거했던 등대를 실측도면에 따라 2008년 5월에 복원했다고 한다.
금강자전거길에서 만난 내륙 안에 있는 등대를 만났다.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면 강경젓갈 전시관과 강경 황상 등대전망대에도 들렸다가 왔어야 하는데 아쉽다.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여행에 대한 작가의 고찰이 담겨 있는 부분입니다.
-‘나에게 여행은 세계의 내용과 표정을 관찰하는 노동이다.’ 여행은 ‘관찰하는 노동’이라며 방점을 찍었습니다. 여행=노동이 어울리지 않는데 이 의미를 유심히 봐주세요.
-‘나는 여행할 때 늘 성능 좋은 망원경을 두어 개 가지고 간다.’ 며 망원경을 챙기는 이유와 쓰임도 설명합니다.
-‘썰물에 갇힌 낡은 어선들, 선착장 쓰레기통에 쌓인 소주병들, 노는 아이들과 개들, 물가에 오랫동안 혼자 앉아 있는 늙은 여자’등 바닷가 풍경과 어선, 아이들, 개들, 소주병 등으로 어촌풍경이 연상됩니다.
-‘망원경 속에서, 생활은 영원하다.’ 이런 표현이 에세이를 수려하게 만듭니다.
-‘저물어서, 늙은 농부가 경운기를 몰아 집으로 돌아갈 때 나는 느낌으로 가득 차서 여관으로 돌아간다.’ 여관이라는 단어가 정감 있게 들립니다.
-작가가 괌과 뉴기니 사이의 섬들을 여행한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어둠으로 차단된 수억 년의 시공 저편을 별들은 건너온다.’ 수사적 표현이 아름답습니다.
-‘별이 가득 찬 하늘에서는 내 어린 날의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린다.’ 남태평양에서 별을 보며 개구리 울음소리를 생각하는 작가네요. 별을 보면 각자만의 들리는 소리가 다를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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