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끓이며 (김훈, 문학동네) - 6
목수
나는 놀기를 좋아하고 일하기를 싫어한다. 나는 일이라면 딱 질색이다. 내가 일을 싫어하는 까닭은 분명하고도 정당하다. 일은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키기 때문이다. 부지런을 떨수록 나는 점점 더 나로부터 멀어져서, 낯선 사물이 되어간다. 일은 내 몸을 나로부터 분리시킨다. 일이 몸에 겉돌아서 일 따로 몸 따로가 될 때, 나는 불안하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소외된 노동으로 밥을 먹었다.
나는 이제 아무데다 붙여주는 곳이 없고 기웃거릴 곳도 없어서 혼자 들어앉아 있다. 또 막 무는 개들이 너무 많이 돌아다녀서 대문 밖에 나가지 못한다. 요즘 나의 일이란 하루에 그저 두어 줄씩 작문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때때로 그 나마도 하고 싶지가 않다.(p.127)
공사장 옆 나무그늘에서 목수들이 먹다 남긴 소주를 마셨는데, 내 마음은 슬픔과 기쁨이 뒤엉켜서 기뻤다. 전기톱이 나무속을 파고들어가는 소리와 망치로 못대가리를 때리는 소리는 듣기에 편하다. 소음이 어째서 편안하고 아름답게 들리는가. 그 의문이 또 나를 들볶았다. 아마도 그 소음은 인간의 근육의 힘이 이 세계의 재료들과 직접 부딪치면서 발생하는 소리이기 때문에 듣기에 편안했을 것이다. 그 소음을 편안해하는 내 마음은 나 자신의 결핍이고 불행일 것이다.
나는 목수들이 잘라내버린 나무 조각 몇 개를 얻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마당에서 그 나무에 망치질을 했다. 나무통을 짜서 거기에 옥수수를 기르기로 했다. 못 박기는 쉽지 않았다. 못은 힘의 크기로 박는 것이 아니라, 힘의 각도로 박는다는 이치를 나는 알았다. 못대가리를 수직으로 정확히 때리지 않으면, 힘이 클수록 못은 휘어져서 일을 망친다. 수많은 못이 휘어진 뒤에, 나무통 몇 개를 겨우 만들었다. (p.129)
■ 문장 분석
-놀기와 일하기를 ‘좋다’와 ‘싫다’로 표현합니다.
-딱 질색이다/ 나로부터 멀어져서/ 낯선 사물/내 몸을 나로부터 분리시킨다./ 이 몸에 겉돌아서/ 일따로 몸따로/ 나는 불안하다 등 일이 싫은 이유를 나열합니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소외된 노동으로 밥을 먹었다.’ 며 ‘소외된 노동’이라고 썼네요. 일이 싫은 분명한 이유를 밝힙니다.
-자신의 직업은 연필과 지우개이지만, 목수들은 망치질, 톱질, 대패질이라며 이것들이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내 마음은 슬픔과 기쁨이 뒤엉켜서 기뻤다.’ 작가 김훈은 왜 이런 기분이 들까?를 생각하게 하는 문장입니다.
-‘전기톱이 나무속을 파고들어가는 소리와 망치로 못대가리를 때리는 소리는 듣기에 편하다.’ 이런 소리들이 듣기에 편하다고 하네요.
-누군가에게는 소음 같은 소리가 작가에겐 편안하고 아름답게 들리는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 의문이 또 나를 들볶았다.’에서 ‘들볶았다’는 표현에 주목해봅시다.
-‘아마도 그 소음은~~~ 편안했을 것이다.’ 하면서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근육의 힘이 이 세계의 재료들과 직접 부딪치면서 발생하는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소음을 편안해하는 내 마음은 나 자신의 결핍이고 불행일 것이다’며 자신을 마주합니다.
-목수와 자신의 직업을 간접적으로 비교하며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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