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에세이필사

라면을 끓이며 (김훈, 문학동네) - 7

물빛향기 2020. 3. 23. 14:21

라면을 끓이며 (김훈, 문학동네) - 7


세월호


나는 본래 어둡고 오활하여, 폐구閉口로 겨우 일신의 적막을 지탱하고 있다. 더구나 궁벽한 갯가에 엎드린 지 오래니 세상사를 입 벌려 말할 만한 식견이 있을 리 없고, 이러한 말조차 아니함만 못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하되, 잔잔한 바다에서 큰 배가 가라앉아 무죄한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한 사태가 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알지 못하고,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몸을 차고 어두운 물밑에 버려둔 채 새해를 맞으려니 슬프고 기막혀서 겨우 몇 줄 적는다.(p.153)


주어와 술어를 가지런히 조립하는 논리적 정합성만으로는 세월호 사태를 이해할 수도 없고 진상을 밝힐 수도 없을 것이다. 또 이 사태를 객관화해서 3인칭 타자의 자리로 몰아가는 방식으로는 이 비극을 우리들 안으로 끌어들일 수가 없다. 나는 죽음의 숫자를 합산해서 사태의 규모와 중요성을 획정하는 계량적 합리주의에 반대한다. 나는 모든 죽음에 개별적 고통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에 값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생명과 죽음은 추상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회복이 불가능하고 대체가 불가능한 일회적 존재의 영원한 소멸이다.
그래서 한 개인의 횡사는 세계 전체의 무너짐과 맞먹는 것이고, 더구나 그 죽음이 국가의 폭력이나 국가의 의무 불이행으로 비롯된 것이라면 이 세계는 견딜 수 없는 곳이 되고 말 것인데, 이 개별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체제가 전체주의다. 이 개별적 고통에 대한 공감이 없다면 어떤 아름다운 말도 위안이 되지 못하고 경제로 겁을 주어도 탈상은 되지 않는다.(p.175-176)



■ 문장 분석

-폐구(閉口): 입을 다묾.
-세월호 침몰 1주년에 쓴 <새해 특별 기고> 칼럼입니다.
-세월호 사태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담겼습니다.
-‘세월호 사태를 이해할 수도 없고 진상을 밝힐 수도 없을 것이다.’며 그 심정을 먼저 꺼냅니다.
-이 사태를 객관화/ 3인칭 타자/ 숫자를 합산/ 계량적 합리주의/ 추상적인 개념으로 볼 수 없다. 며 이 죽음은 개별적인 죽음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회복이 불가능하고 대체가 불가능한 일회적 존재의 영원한 소멸이다.’고 울분을 내놓습니다.
-‘이 개별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체제가 전체주의다.’라는 시각을 밝힙니다.


-김훈 작가가 쓴 ‘세월호’ 에세이나 칼럼 전문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https://mnews.joins.com/article/16832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