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에세이필사

라면을 끓이며 (김훈, 문학동네) - 9

물빛향기 2020. 3. 23. 14:36

라면을 끓이며 (김훈, 문학동네) - 9


수박


-수박을 먹는 기쁨은 우선 식칼을 들고 이 검푸른 구형의 과일을 두 쪽으로 가르는 데 있다. 잘 익은 수박은 터질 듯이 팽팽해서, 식칼을 반쯤만 밀어넣어도 나머지는 저절로 열린다. 수박은 천지개벽하듯이 갈라진다. 수박이 두 쪽으로 벌어지는 순간, ‘앗!’ 소리를 지를 여유도 없이 초록은 빨강으로 바뀐다. 한 번의 칼질로 이처럼 선명하게도 세계를 전환시키는 사물은 이 세상에 오직 수박뿐이다. 초록의 껍질 속에서, 새카만 씨앗들이 별처럼 박힌 선홍색의 바다가 펼쳐지고, 이 세상에 처음 퍼져나가는 비린 향기가 마루에 가득찬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던, 한바탕의 완연한 아름다움의 세계가 칼 지나간 자리에서 홀연 나타나고, 나타나서 먹히기를 기다리고 있다. 돈과 밥이 나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것은 필시 흥부의 박이다.(p.366)


-수박은 속이 빨간데 자두는 껍질이 빨갛다. 자두의 생김새는 천하의 모든 과일들 중에서 으뜸으로 에로틱하다. 자두는 요물단지로 생겼다. 자두는 식물임에도 불구하고 동물적 에로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수박의 향기는 근본적으로 풀의 향기다. 풀의 향기가 수분에 풀려서 넓게 퍼진다. 자두의 향기는 전혀 다르다. 자두의 향기는 육향(肉香)에 가깝다. 그 향기는 퍼지기보다는 찌른다. 자두를 손으로 만져보면, 그 감촉은 덜자란 동물의 살과 같다. 자두는 껍질을 깎을 필요도 없이 통째로 먹는다. 입을 크게 벌려서, 이걸 깨물어 먹으려면 늘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이 안쓰러움은 여름의 즐거움이다.(p.368)



■ 문장 분석

-수박과 자두를 비교하며 쓴 에세이입니다.
-‘수박을 먹는 기쁨은 우선 식칼을 들고 이 검푸른 구형의 과일을 두 쪽으로 가르는 데 있다.’ 작가는 수박을 가를 때 기쁨이 있다고 합니다.
-‘수박은 천지개벽하듯이 갈라진다.’ 이런 수사법에 주목하면 좋겠네요. 수박 가르는 소리를 천지개벽하듯이~ 라고 비유했습니다.
-‘한 번의 칼질로 이처럼 선명하게도 세계를 전환시키는 사물은 이 세상에 오직 수박뿐이다.’ 수박의 겉과 안을 ‘세계를 전환’으로 비유했는데 특이하네요.
-‘초록의 껍질 속에서, 새카만 씨앗들이 별처럼 박힌 선홍색의 바다가 펼쳐지고, 이 세상에 처음 퍼져나가는 비린 향기가 마루에 가득찬다.’처럼 씨를 별처럼 수박 안을 선홍색 바다로 은유했습니다. 덧붙여 수박향기까지 언급합니다.
-‘자두의 생김새는 천하의 모든 과일들 중에서 으뜸으로 에로틱하다.’ 빨간 자두=에로틱하다고 표현했습니다.
-‘자두는 요물단지로 생겼다.’ 자두는 에로틱해서 또 ‘요물’이라고 썼네요.
-‘수박의 향기는 근본적으로 풀의 향기다. 풀의 향기가 수분에 풀려서 넓게 퍼진다. 자두의 향기는 전혀 다르다. 자두의 향기는 육향(肉香)에 가깝다.’ 수박과 달리 자두가 왜 에로틱한지 ‘향기’로 비교해줍니다.
-육향 [肉香] : 몸에서 나는 냄새
-‘이 안쓰러움은 여름의 즐거움이다.’ 인간의 입에 통째로 한 입에 들어가는 자두의 운명이 안쓰럽다고 하네요.
-수박과 자두는 여름날 즐거움이라고 합니다.
-좋아하는 과일을 정해 이와 엇비슷하게 작문하셔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