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 시집<이 시대의 아벨>(문학과 지성사, 1983)
=== 생즉사사즉생(生卽死 死卽生)
☞ 살려고 하면 죽고 죽으려고 하면 산다.
바람에 흔들거리며 흔들리는 상한 영혼이여!
흔들려 고통과 함께하고 세상의 아픔과 슬픔을 털어버리고
하늘 향해서 흔들흔들 넘어질듯 다시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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