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에세이필사

오늘 뭐 먹지? (권여선 음식산문집) - 7

물빛향기 2020. 4. 5. 20:16

오늘 뭐 먹지? (권여선 음식산문집) - 7


4부 겨울•처음의 맛
솔푸드 꼬막조림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랑하고 연애하고 결혼하게 될 때, 의외의 복병은 음식이다. 처음 열정에 사로잡혔을 때에야 음식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음식뿐이랴. 세상 어느 것도 눈에 뵈는 게 없다. 넓디넓은 푸른 바다에 오직 그 사람과 나, 단둘이만 작은 배 위에서 격하게 흔들린다. 그런데 데이트를 하고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때로 술도 한잔하다보면 비로소 음식이니 식성이니 하는 문제가 떠오르는 시기로 접어든다. 연인들의 항해는 어느덧 끝이 나고, 작은 점처럼 멀어졌던 현실이 점점 거대한 해안선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거기엔 온갖 비루하고 형이하학적인 문제들이 들끓고 있는데, 음식도 그중 하나이다.
   음식은 위기와 갈등을 만들기도 하고 화해와 위안을 주기도 한다. 한 식구(食口)란 음식을 같이 먹는 입들이니, 함께 살기 위해서도 사랑이나 열정도 중요하지만, 국의 간이나 김치의 맛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식구만 그런 게 아니다. 친구, 선후배, 동료, 친척 등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다. 나는 사람들을 가장 소박한 기쁨으로 결합시키는 요소가 음식이라 생각한다. 맛있는 음식을 놓고 둘러앉았을 때의 잔잔한 흥분과 쾌감, 서로 먹기를 권하는 몸짓을 할 때의 활기찬 연대감, 음식을 맛보고 서로 눈이 마주쳤을 때의 무한한 희열. 나는 그보다 아름다운 광경과 그보다 따뜻한 공감은 상상할 수 없다.(p.190)



■ 문장 분석

-권여선 작가가 생각하는 ‘음식’의 중요성을 말하는 부분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랑하고 연애하고 결혼하게 될 때, 의외의 복병은 음식이다.’ 결혼하면 의외로 음식문제가 크다는 부분을 언급합니다.
-‘연인들의 항해는 어느덧 끝이 나고, 작은 점처럼 멀어졌던 현실이 점점 거대한 해안선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연인들의 사랑이 아닌 ‘항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푸른바다/ 작은 배/ 항해/ 해안선 등 사랑을 이런 단어로 비유하고 있네요.
-‘거기엔 온갖 비루하고 형이하학적인 문제들이 들끓고 있는데, 음식도 그중 하나이다.’ 연인들에게도 벌어지는 문제를 ‘온갖 비루하고 형이하학적’이라고 표현했네요. 여러 문제 중 음식도 포함된다고 말합니다.
-식구(食口):한집에서 같이 살며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
-‘나는 사람들을 가장 소박한 기쁨으로 결합시키는 요소가 음식이라 생각한다.’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요소로 음식을 뽑고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놓고 둘러앉았을 때의 잔잔한 흥분과 쾌감, 서로 먹기를 권하는 몸짓을 할 때의 활기찬 연대감, (...)나는 그보다 아름다운 광경과 그보다 따뜻한 공감은 상상할 수 없다.’ 음식 예찬론이네요. 작가가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명징하게 드러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