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뭐 먹지? (권여선 음식산문집) - 6
가을무 삼단케이크
말이 나온 김에, 무와 김이 얼마나 맛있는 조합이지 얘기해야겠다. 어렸을 때, 겨울에 딱히 먹을 반찬이 없으면 어머니는 아침마다 김 수십 장을 참기름 발라 소금 뿌려 구웠다. 그럴 때면 딸 셋 중 누군가는 고무장갑을 끼고 양재기를 들고 마당에 나가 살얼음 낀 동치미를 떠 와야 했다. 뜨거운 밥을 구운 김에 싸 먹고 차디찬 동치미 무와 국물을 떠먹으면 그 조합이 기가 막혔다. 아침에 없던 반찬이 저녁에 생길 리가 없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무를 큼직큼직 썰고 양념장을 뿌리고 멸치육수를 부어 무조림을 만들었다. 무만 조려도 맛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영양가가 부족할 수 있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무 위에 부친 두부와 반 가른 삶은 달걀도 얹어 삼층 조림을 만들기도 했다. 요즘도 나는 가끔 그렇게 어머니가 했던 방식대로 층층이 양념장을 뿌려 매콤한 삼층 조림을 만들어 무와 두부, 삶은 달걀을 건져 먹고 자작한 국물도 밥에 비벼 먹는다.
무는 생선이나 해물, 고기에 두루 어울려 탕이고 조림이고 안 들어가는 데가 거의 없다. 특히 가을에 그 맛이 절정인 꽃게탕이나 갈치조림에는 무조건 무가 들어가야 한다. 나는 꽃게는 탕으로 먹는 것보다 찜으로 먹는 걸 좋아해서 꽃게탕은 잘 끓이지 않는다. 하지만 갈치조림은 가계의 출혈을 무릅쓰고 가을에 꼭 한 번은 만들어 먹고야 마는 음식이다.(p.163)
■ 문장 분석
-‘무’라는 한가지 재료에만 집중해서 쓴 에세이입니다.
-‘무와 김이 얼마나 맛있는 조합이지 얘기해야겠다.’ 며 ‘무’와 조합이 잘 되는 재료 중 김을 골랐네요.
-‘그럴 때면 딸 셋 중 누군가는 고무장갑을 끼고 양재기를 들고 마당에 나가 살얼음 낀 동치미를 떠 와야 했다.’에서 살얼음 낀 동치미를 떠오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뜨거운 밥을 구운 김에 싸 먹고 차디찬 동치미 무와 국물을 떠먹으면 그 조합이 기가 막혔다.’ 뜨거운 밥/ 차디찬 동치미 무와 국물/ 조합이 기가 막혔다/ 라는 표현이 탁월합니다. 뜨겁다와 차갑다를 대비시키고 있어요.
-‘어머니는 무를 큼직큼직 썰고 양념장을 뿌리고 멸치육수를 부어 무조림을 만들었다.’ 동치미에서 무조림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며 무에 얽힌 추억을 끌어옵니다.
-‘특히 가을에 그 맛이 절정인 꽃게탕이나 갈치조림에는 무조건 무가 들어가야 한다.’ 무가 들어가는 음식 중 꽃게탕과 갈치조림을 알려줍니다. ‘무조건’이란 단어가 붙어 강조도 엿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갈치조림은 가계의 출혈을 무릅쓰고 가을에 꼭 한 번은 만들어 먹고야 마는 음식이다.’ 꼭 사 먹는 음식이란 표현을 ‘가계의 출혈을 무릅쓰고’ 라고 비슷한 표현을 썼습니다.
-한 가지 재료로 연상되거나 궁합이 잘 어울리는 음식과 연결해 짧은 에세이를 써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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