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뭐 먹지? (권여선 음식산문집) - 8
집밥의 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집밥은 소박하지만 맛깔난 손맛이 담긴 밥상을 의미한다. 집밥이란 말을 들으면 누구나 향수에 젖은 표정을 짓고 입속에 고인 침을 조용히 삼키는데, 이건 순전히 집밥을 하지 않고 먹고만 싶어 하는 사람들의 환상이 아닐까 싶다. “오늘은 뭐 먹지?”라는 잔잔한 기대가 “오늘 뭐 해 먹지?로 바뀌는 순간 무거운 의무가 된다. 집에서 해 먹는 게 집밥이라면, 집집마다 그 집 부엌칼을 쥔 사람이 다른데 어떻게 그게 죄다 소박하면서 맛깔날 수 있단 말인가. 집밥이 무조건 맛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임에는 분명하지만, 옳지는 않다.(p.208)
내가 이십 대 후반 무렵 겨울에 비록 반지하방이긴 해도 처음 독립해 자취를 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내 부엌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 방에서의 첫 식사를 아직도 기억한다. 이사를 마치고 피곤한 와중에도 나는 기운을 북돋워 시장에 나가 소고기와 콩나물, 꼬막과 양념거리를 사 왔다. 소고기에 콩나물과 대파를 넣어 고깃국을 끓이고 꼬막을 삶아 양념장을 듬뿍 넣어 조렸다. 내 조그만 자취방은 금세 맛난 고기와 조개, 양념 냄새로 가득했다. 훌륭한 만찬에 소주까지 곁들이니 부러울 게 없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드디어 어머니의 집밥의 시대가 끝나고 내 집밥의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앞으로 집밥을 좋아하게 될지 싫어하게 될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내 손에 달렸다는 것을.(p.210)
■ 문장 분석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집밥은 소박하지만 맛깔난 손맛이 담긴 밥상을 의미한다.’ 며 자신은 ‘대부분’에 속하지 않음을 설파합니다. (이유는 에세이 중간에 나옵니다.)
-‘집밥이란 말을 들으면 누구나 향수에 젖은 표정을 짓고 입속에 고인 침을 조용히 삼키는데, 이건 순전히 집밥을 하지 않고 먹고만 싶어 하는 사람들의 환상이 아닐까 싶다.’ 집밥=먹고만 싶어 하는 사람들=환상이라고 말합니다. 집밥을 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게 만드는 문장입니다.
-‘ “오늘은 뭐 먹지?”라는 잔잔한 기대가 “오늘 뭐 해 먹지?로 바뀌는 순간 무거운 의무가 된다.’ 먹지/ 해먹지의 차이, 잔잔한 기대와 무거운 의무의 대비를 다룬 문장입니다.
-‘처음 독립해 자취를 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내 부엌이 생겼다는 것이다.’ 반지하지만 자신의 부엌이 생겨 좋았던 부분을 쓴 에세이입니다.
-‘이사를 마치고 피곤한 와중에도 나는 기운을 북돋워 시장에 나가 소고기와 콩나물, 꼬막과 양념거리를 사 왔다.’ 이십대였던 작가는 이사 후 이런 음식을 만들었네요.
-‘내 조그만 자취방은 금세 맛난 고기와 조개, 양념 냄새로 가득했다.’ 음식 냄새로 가득 찬 자취방이 따뜻함이 느껴지는 문장입니다.
-‘훌륭한 만찬에 소주까지 곁들이니 부러울 게 없었다.’ 훌륭한/ 만찬/ 소주/ 부러울 게/ 얼마나 좋았는지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어머니의 집밥의 시대가 끝나고 내 집밥의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자신의 부엌을 가졌으니 이제 자신이 만든 집밥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독서이야기 > 에세이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 뭐 먹지? (권여선 음식산문집) - 10 (0) | 2020.04.06 |
---|---|
오늘 뭐 먹지? (권여선 음식산문집) - 9 (0) | 2020.04.06 |
오늘 뭐 먹지? (권여선 음식산문집) - 7 (0) | 2020.04.05 |
오늘 뭐 먹지? (권여선 음식산문집) - 6 (0) | 2020.04.05 |
오늘 뭐 먹지? (권여선 음식산문집) - 5 (0) | 2020.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