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뭐 먹지? (권여선 음식산문집) - 4
2부 여름 · 이열치열의 맛
땡초의 계절
첫 번째 세트인 ‘호박잎쌈과 깡장’에 대해 얘기해보자. 조금씩 더워지기 시작할 무렵 시장에는 한 단씩 묶어놓은 호박잎이 아기의 원피스 치마폭처럼 살그머니 모습을 드러낸다. 보기만 해도 눈이 시원하다. 호박도 한 개 이천 원 삼천 원 하던 것이 점점 싸져서 한 개 천 원이 되고 두 개 천 원이 되고 세 개 천 원까지 된다. 여름엔 호박과 호박잎이 보약이다. 호박잎 한 단, 호박 한 개, 땡초 한 줌만 있으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름 음식 한 세트가 완성된다.(p.106)
이제 밥만 있으면 된다. 따끈한 호박잎 위에 뜨끈한 깡장과 밥을 얹어 쌈을 싸 먹으면 입에 불이 난다. 불이 나긴 나는데, 요즘 매운 음식처럼 불만 나고 마는 게 아니라 가슴속 깊숙이 구수하고 복잡하고 그리운 불이 난다. 다 식은 호박잎쌈과 깡장은 그릇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둔다. 일주일 내내 시원한 보리차를 끓여놓고, 매일 한 끼는 찬 호박잎쌈과 깡장을 꺼내 밥 싸 먹고 보리차를 마신다.(p.107)
■ 문장 분석
-여름에 빼놓지 않고 먹는 음식을 소개합니다.
-‘호박잎쌈과 깡장’, ‘양배추쌈과 고추장물’인데 그 중 ‘호박잎쌈과 깡장’에 관한 부분입니다.
-‘호박잎이 아기의 원피스 치마폭처럼 살그머니 모습을 드러낸다.’며 초록의 호박잎을 원피스 치마폭이라고 비유합니다. 음식재료를 보고 다른 사물과 비유하는 연습을 해봐도 좋겠습니다.
-‘호박도 한 개 이천 원 삼천 원 하던 것이 점점 싸져서 한 개 천 원이 되고 두 개 천 원이 되고 세 개 천 원까지 된다.’ 리듬감 있게 나열한 문장입니다. 한 개, 두 개, 세 개, 이천 원, 삼천 원, 천원~~
-‘여름엔 호박과 호박잎이 보약이다.’ 보약을 대신할 음식이 참 많은데 권여선 작가는 보약=호박, 호박잎이라고 했네요.
-‘불이 나긴 나는데, 요즘 매운 음식처럼 불만 나고 마는 게 아니라 가슴속 깊숙이 구수하고 복잡하고 그리운 불이 난다.’ 가슴속 깊숙이 구수하고 복잡하고 그리운 불이 난다고 하네요. 자극적인 매운음식과 달리 땡초를 넣은 깡장은 그리움의 기억도 소환되는 거 같습니다.
-‘일주일 내내 시원한 보리차를 끓여놓고, 매일 한 끼는 찬 호박잎쌈과 깡장을 꺼내 밥 싸 먹고 보리차를 마신다.’ 시원한 보리차/ 찬 호박잎쌈만으로도 여름의 더위를 식히는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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