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세이 필사 6일 차
그림자를 판 사나이
밤샘 시위자들이 설치한 각양각색의 텐트들로 뒤덮인 공원 구석구석엔 답지한 기부 물품들이 곳곳에 산처럼 쌓여 있었다. 텐트에선 대마초 냄새가 진하게 풍겨 나왔다. 수시로 피자가 배달되었고 사람들은 줄을 서서 하루 종일 피자를 먹었다. 나도 피자 한 조각을 배급받고 사방에 쌓여 있는 음료수 상자에서 생수를 꺼내 마셨다.
공원 한구석에는 도서관도 있었다. 사람들이 기부한 책에 OWS(Occupy Wall Street)라는 장서인만 찍어 보관하고 있었다. 누구라도 아무 절차 없이 책을 대출할 수 있었다. 통일된 조직 체계는 없었지만 주코티 공원은 자생적으로 작은 도시를 형성해가고 있었다.
텐트들이 모여 있는 주거지역과 토론과 회의가 열리는 일종의 아고라 같은 공적 공간이 나뉘었다. 누구든 받아들여졌다. 노숙자, 실업자, 성소수자, 공산주의자와 음모론자가 한자리에서 담배(혹은 비슷한 무엇)를 나눠 (혹은 돌려) 피우며 어울렸다. 나와 같은 여행자들만이 예외였다.
그들은 나처럼 카메라를 들고 와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피자를 얻어먹기도 했지만, 대체로 그게 전부였다. 골판지에 주장을 적어 들고 있거나, 큰 소리로 외치지 않았다. 모두가 동등하고, 모두가 받아들였지만, 그것은 그곳에 ‘그림자’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 한해서였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세금을 내고, 그 나라의 운명에 자기와 자기 가족의 미래가 걸려 있는 사람들, 월스트리트에서 벌어지는 짓들이 자기 삶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문제였다. 나와 같은 여행자는 떠나면 그뿐이었다. 여행자는 관찰하고 기록하고 때로는 일시적으로 참여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떠나간다. - 여행의 이유(김영하) p.123~124
■ 문장 분석
- 2011년 가을 뉴욕에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시위를 본 경험담입니다.
- 시위가 벌어진 장소는 뉴욕 주코티 공원인데 작가는 배낭을 메고 공원에 갔다고 합니다.
- 시위 현장은 예상과 달리 그들만의 독특한 시위 문화가 형성되고 있음을 목격합니다.
- ‘밤샘 시위자들이 설치한 각양각색의 텐트들로 뒤덮인 공원 구석구석엔 답지한 기부 물품들이 곳곳에 산처럼 쌓여 있었다.’ 공원의 시위 현장을 묘사한 부분입니다.
- 답지 [遝至] :한 곳으로 몰려듦.
- ‘텐트에선 대마초 냄새가 진하게 풍겨 나왔다.’ 이 문장으로 공원의 모습을 조금 상상하게 됩니다.
- ‘수시로 피자가 배달되었고 사람들은 줄을 서서 하루 종일 피자를 먹었다.’ 시위하면서 먹은 음식이 피자였네요. 하루종일 피자를 먹으며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그려집니다.
- ‘사람들이 기부한 책에 OWS(Occupy Wall Street)라는 장서인만 찍어 보관하고 있었다.’ 월가를 점령하라(OWS·Occupy Wall Street)는 도장을 찍힌 책.-시위 현장에 도서관이라니 독특한 시위 문화가 증명됩니다.
- ‘텐트들이 모여 있는 주거지역과 토론과 회의가 열리는 일종의 아고라 같은 공적 공간이 나뉘었다.’ 텐트라는 공간에서 아고라를 형성해 나갑니다.
- ‘노숙자, 실업자, 성소수자, 공산주의자와 음모론자가 한자리에서 담배(혹은 비슷한 무엇)를 나눠 (혹은 돌려) 피우며 어울렸다.’ 누구든 토론을 하며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겠네요.
- 아고라 agora: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광장으로 민회(民會)나 재판, 상업, 사교 등의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졌다. 오늘날에는 공적인 의사소통이나 직접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말로 널리 사용된다.
- ‘나와 같은 여행자들만이 예외였다.’ 여행자는 잠시 왔다 떠나는 사람들이므로 관찰자,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겠습니다.
- ‘모두가 동등하고, 모두가 받아들였지만, 그것은 그곳에 ‘그림자’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 한해서였다.’ 여기서 그림자는 관계망을 뜻하겠습니다.
- ‘미국이라는 나라에 세금을 내고, 그 나라의 운명에 자기와 자기 가족의 미래가 걸려 있는 사람들, 월스트리트에서 벌어지는 짓들이 자기 삶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문제였다.’ 이곳에 거주하고 관계되고 연루된 사람들의 삶의 문제가 있겠네요.
- 여행지에서 바라본 관찰자의 시선을 묘사해도 좋겠습니다.
단상) 낯설음의 시선
"여행자는
관찰하고 기록하고
때로는
일시적으로 참여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떠나간다."
- 여행의 이유(김영하) p.123~124
평범한 일상 속에서, 언젠가 장기 여행을 떠날 것을 기대하고, 관찰하고 기록하고 바쁜 삶 속에서도 떠날 수 있게 준비를 해야겠다.
지난 수요일(4월 15일), 아침에 아이들과 함께 총선 투표를 하기 위해 투표소를 찾았다. 다른 때와 다른 풍경이 전개되었다. 투표소에 들어가기 전에 밖에서 비닐장갑을 끼고, 손 소독제를 바르고, 신분확인을 하고, 기표소에서 기표하고 투표함에 넣고 나온다. 그런데 연세가 있는 노부부가 기표소까지 함께 들어가는 상황이 있어서, 참관인들이 행동을 제제하기도 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리고 딸내미 운전 연습 겸 가족 나들이를 아침고요 수목원을 다녀왔다.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구입해서 수목원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나들이 나와서 들뜨고, 새롭고 어제와 다른 환경에서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 짧은 나들이 여행이지만, 일상과 완전 다른 무언가를 기대하게 되었다.
들어가는 입구에 쾌, 흔들리는 출렁다리가 있는데, 장난으로 다리를 흔드는 사람, 겁나서 엉금엉금 난간을 잡고 가는 사람, 신나서 뛰는 젊은이들 각지각색의 사람들 모습이 보인다. 부지런히 꽃을 심고, 손질하는 사람이 있고,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 잔디밭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부지런히 걸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천천히 꽃과 식물을 감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상의 탈출인 나들이 여행은 평소와 다른 공간에서, 환경에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숨 쉬다 오는 조금 다른 일상의 변화의 나들이 여행이었다. 살짝 낯설게 바라보는 일상과 평범했던 일상에서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보는 시간의 흐름과 조금 낯설음과 편안함을 느끼는 그런 하루였다.
나에게 짧은 나들이 여행은 삶의 주인공으로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여유 있는 나들이 , 적당한 낯설음의 시선을 즐겼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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