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야기/에세이필사

2. 야간비행(물탱크 방에서) <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물빛향기 2020. 5. 4. 18:48

에세이 필사 2일차 - <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야간비행
   내가 매일 몸을 뉜 방은 어둡고 선득한 곳이었다. 작은 문 안으로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면 세로로 놓인 관처럼 깊은 내부가 시원하게 나를 맞은 기억이 난다. 나는 그 방에 책상과 컴퓨터 등 참으로 학생다운 가재를 들여놓았고, 싸고 네모난 가구들이 만들어낸 깔끔한 각을 보며 흡족해했다. 나는 자주 밥을 거르고, 밤을 새우고, 술을 마셨지만, 스무 살의 내 몸은 지나치게 건강해 아무 때고 벌떡 일어나 놀러 나갈 수 있었다. 음악은 잘 듣지 않았고 책은 늘 엎드려 읽었다. 빨래를 자주 미뤘고, 어머니에게 종종 공과금 액수를 속였다.
   몸에 아직 읽고 쓰는 습관이 배지 않았을 때에도 이따금 나는 대가리가 커다란 컴퓨터 앞에 앉아 무언가 기록해보곤 했다. 전공시간에 칭찬이라도 한번 받으면 밤새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 웃었다. 그 작고 불편한 방에 신을 벗고 들어설 때마다 이상하게 쉬러 가는 느낌이 들곤 했다. 어쩌면 방을 구하던 날 이후 영원히 내 머리 위를 떠나지 않던 태양, 그 때문인지도 몰랐다.
   비록 고향을 떠나긴 했지만 나는 내 몫의 그 작은 어둠과 고요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내 몸에 꼭 맞는 육면六面의 고요속에서, 내 가슴팍을 향해 하늘에서 닻처럼 내려온 형광등 줄의 흔들거림을 바라보며 가만히 누워 있는 걸 좋아했다. 딸각이는 스위치 소리 한 번에 세계는 일순 조용해졌고, 나는 반듯이 누워 두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그럴 때면 언제나 지나간 빛을 한껏 빨아 통통해진 야광별이 천장에서 총총 빛났다. ‘중국의 붉은 별’도 루카치의 별도 아닌, 납작 엎드려 가까스로 빛나던 형광 스티커들.            - 잊기좋은이름 (김애란, p.26~28)

■ 문장 분석

- 8월 더운 날 어머니와 서울에 상경하여 자취방을 구하는 부분입니다.(2006)
- ‘내가 매일 몸을 뉜 방은 어둡고 선득한 곳이었다.’ 처음 구한 방을 묘사한 첫 문장입니다. 어둡고 선득하다고 썼네요.
-선득하다[형용사] 1. 갑자기 서늘한 느낌이 있다. 2. 갑자기 놀라서 마음에 서늘한 느낌이 있다.
- ‘작은 문 안으로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면 세로로 놓인 관처럼 깊은 내부가 시원하게 나를 맞은 기억이 난다.’ 선득한 이유를 적었습니다. 세로로 놓인 관처럼~ 햇볕이 잘 들지 않는 곳임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 ‘음악은 잘 듣지 않았고 책은 늘 엎드려 읽었다. 빨래를 자주 미뤘고, 어머니에게 종종 공과금 액수를 속였다.’ 서울에 혼자 상경하여 자신의 일상을 짧고 간략하게 나열했습니다.
- ‘몸에 아직 읽고 쓰는 습관이 배지 않았을 때에도 이따금 나는 대가리가 커다란 컴퓨터 앞에 앉아 무언가 기록해보곤 했다.’ 읽기보다 쓰기를 더 많이 했다는 걸 알게 되는 문장입니다.
- ‘전공시간에 칭찬이라도 한번 받으면 밤새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 웃었다.’ 다른 수업도 아니고 전공과목을 칭찬받았다니 잘했나봅니다. ‘밤새~’ 얼마나 좋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 ‘비록 고향을 떠나긴 했지만 나는 내 몫의 그 작은 어둠과 고요가 마음에 들었다.’ 고향을 떠나 혼자 사는 마음을 ‘내 몫의 그 작은 어둠과 고요’라고 표현했네요.
- ‘나는 내 몸에 꼭 맞는 육면六面의 고요속에서, 내 가슴팍을 향해 하늘에서 닻처럼 내려온 형광등 줄의 흔들거림을 바라보며 가만히 누워 있는 걸 좋아했다.’ 방을 묘사한 부분이 압도적으로 아름답습니다. 방이 여섯 면이고 형광등 줄이 닻처럼 내려온다고 하네요. 캬
- ‘딸각이는 스위치 소리 한 번에 세계는 일순 조용해졌고, 나는 반듯이 누워 두 눈을 깜빡였다.’ 불을 끄는 순간, 그 스위치 소리와 세계를 일치시키고 있습니다.
- ‘‘중국의 붉은 별’도 루카치의 별도 아닌, 납작 엎드려 가까스로 빛나던 형광 스티커들.’ 희망에 대한 은유를 했습니다. 한때 붉은 별이었고, 루카치의 별이었던 희망. 그러나 지금은 가까스로 빛나고 있다고 말하네요.

단상)  물탱크 방에서
    1991년 가을 어느 날

    혼자만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방을 알아보고 있었다. 가진 돈은 없고, 날씨는 덥고, 서울 하늘 아래 혼자서 기거할 방 하나 없는 신세를 한탄하며 걸었었다.

 

    어느 날 알고 지내던 어르신께서 자기 집 옥상에 옥탑방이 아니라 물탱트가 있는 창고가 있다고 하면서, 그곳이라도 사용하려면 하란다.

 

    고향 떠나 이렇게 처절하게 삶을 구걸하며 서울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무일푼으로 서울에 올라와서 물탱크 위에다 합판으로 바닥과 물탱크 위에 바닥을 만들고, 장판을 깔고, 도배를 하니, 작은방이 하나 생겼다. 겨울에는 추워서 고드름이 생기고, 여름에는 한증막 같은 열기 속에서 약 1년을 그곳에서 생활 했다.

 

    그래도 방이라고 두 다리 뻗고 잠을 잘 수 있었다. 희미한 전등불 아래서 라디오에서 흐르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다가 답답하며, 문 열고 옥상에서 서울의 밤하늘을 쳐다보곤 했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또 옆으로 시선을 돌리면 수많은 빌딩과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구의동 옥상에서의 생활이 없는 자의 작은 행복이 그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형편이 나아져서 2층에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