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필사 4일차 <잊기좋은이름, 김애란>
당신과 조우
전화를 끊은 뒤 마음 같아선 그 자리에서 비명이라도 지르고 재주라도 세 번 넘고 싶었지만 컴퓨터실에 붙은 ‘정숙’이란 단어를 보고 겨우 참았다. 그때 마음껏 발산하지 못한 기쁨이 멍울져 지금도 가끔 가슴이 답답하다. 증상을 들은 한 선배는 화병과 비슷하니 야산에 구덩이를 파고 밤마다 세 번 웃으면 낫는다고 했다. 나는 당선 사실을 종일 숨겼다. 말하고 나면 뭔가 훼손될 것 같고 그러면서도 세상 모든 이들에게 떠벌리고 싶었다. 비밀을 가진 자의 자부와 수치, 떨림과 번뇌로 얼굴이 핼쑥해질 즈음 나는 이 사실을 누군가에게 알리기로 마음먹었다.
어머니는 내 소식을 노래방에서 들었다. 근면하고 노래 못하는 내 어머니는 그날 가게 문을 닫고 초저녁부터 노래방에 있었다. 나는 그걸 별로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서해 언저리 시골 읍내에 자리한 우리 집안에 나쁜 소식과 더 나쁜 소식이 연이어 도착하던 시절의 일이었다. 수화기 너머 어머니는 좀 취해 있었다. 그리고 내 얘기를 들은 뒤 무척 기뻐하셨다. 그 감격이 명예에 있는 건지 상금에 있는 건지 알 수 없으나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었다. 어머니 뒤편에서 아주머니들의 노랫소리가 왕왕거리며 들려왔다. 내가 너무 조용한 곳에서 소식을 접한 것과 달리 어머니는 너무 시끄러운 장소에 있던 탓에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했다. - 잊기좋은이름 (김애란 p45~47)
■ 문장 분석
- 처음으로 등단소식을 들은 날의 감격을 쓴 에세이입니다.(2008)
- ‘전화를 끊은 뒤 마음 같아선 그 자리에서 비명이라도 지르고 재주라도 세 번 넘고 싶었지만 컴퓨터실에 붙은 ‘정숙’이란 단어를 보고 겨우 참았다.’ 등단 소식을 들었던 장소가 컴퓨터실이라 맘껏 소리를 지르지 못하고 기뻐하지 못한 상황이었음을 보여줍니다.
- ‘그때 마음껏 발산하지 못한 기쁨이 멍울져 지금도 가끔 가슴이 답답하다.’ 당선의 기쁨/ 멍울져/지금도/가끔/가슴이/답답하다 라고 썼네요. 그 마음이 어떨까 유추해봅니다.
- ‘비밀을 가진 자의 자부와 수치, 떨림과 번뇌로 얼굴이 핼쑥해질 즈음 나는 이 사실을 누군가에게 알리기로 마음먹었다.’ 당선사실을 종일 숨겼던 심정을 표현한 단어들입니다. 자부와 수치, 떨림과 번뇌~ 온갖 생각이 들었겠습니다.
- ‘어머니는 내 소식을 노래방에서 들었다.’ 자신은 조용한 컴퓨터실에서 당선 소식을 들었는데 어머니는 시끄러운 노래방에서 당선 소식을 듣었네요. 정반대의 상황입니다.
- ‘어머니 뒤편에서 아주머니들의 노랫소리가 왕왕거리며 들려왔다.’ 소리를 표현했지만 그림이 그려집니다.
- ‘내가 너무 조용한 곳에서 소식을 접한 것과 달리 어머니는 너무 시끄러운 장소에 있던 탓에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했다.’ 딸도, 어머니도 등단 소식을 듣고 맘껏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아쉬움이 가득합니다.
- 이렇게 등단 소식을 들은 김애란은 ‘나는 내가 정말 글을 쓰며 살게 되리라곤 생각 못 했다’(p.48)쓰기도 했습니다. 인생은 묘합니다.
- 기뻤던 순간을 더듬어 에세이를 써도 좋겠습니다.
단상)
쌍태를 만남
물탱크 방에서 불편했지만, 나름대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약 1년 동안 알뜰하게 모아서 월세 500만원에 5만원 월세로 나만의 작은 공간을 마련했다. 물탱크 방에서 생활할 때 보다, 얼마나 좋은지 날아갈 것만 같다.
그리고 몇 년 후에 나를 구제해준 아내를 만나게 되어 결혼을 했다. 신혼의 재미에 빠졌는데,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 기쁨도 잠깐,, 슬픔을 안고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고향집에 갔더니, ‘며느리가 임신한 것 아니냐’고 하시는 어머니. 우리는 아니라고 했지만, 병원을 찾아갔다. 검사 결과 임신이 확실하단다.
몇 주를 검사를 하며 태어날 아기를 위해 기도하며 기다렸다. 4~5개월 되어서 초음파 검사 및 여러 검사를 했는데, 태아가 쌍태란다. 그것도 이란성쌍태란다.. 당장 부모님과 장모님께 연락을 해서, 태아는 건강하고, 또 쌍태라고 말씀을 들렸다.
그리고 우리 쌍둥이들은 38주 만에 찾아왔다. 아들은 약하게 태어나서 병원에 한 달 정도 입원해 있었고, 딸내미와 아내만 먼저 퇴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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