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필사 1일차 - <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나를 키운 팔 할은
나는 우리 삶에 생존만 있는 게 아니라 사치와 허영과 아름다움이 깃드는 게 좋았다. 때론 그렇게 반짝이는 것들을 밟고 건너야만 하는 시절도 있는 법이니까. 어머니는 밥장사를 하면서도 인간이 밥만 먹고 살 수 없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기꺼이 아무 의심 없이 딸들에게 책을 사줬다. 동시에 자기 옷도 사고 분도 발랐다. 손님 없는 한적한 오후, 홀과 마주한 작은 방에 누워 내게 <따오기>나 <고향 땅>을 청해 듣던 엄마 얼굴이 지금도 기억나는 건 아마 그 때문일 거다. 피아노 연주에 맞춰 허공에서 발 박자를 맞추던 엄마의 작은 발이랄까 설거지물 밴 양말 앞코가 종종 떠오르는 것도. 우리 가족은 재래식 화장실과 삼익피아노가 공존하는 집에 살았고 훗날 이때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칼자국」과 「도도한 생활」같은 단편을 쓸 수 있었다. - 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p.12~13)
고3 여름방학 때 나는 사범대학에 가라는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고 몰래 예술학교 시험을 봤다. 그건 내가 부모에게 한 최초의 거짓말은 아니었을지라도 결정적 거짓말이었다. 나를 키운 팔 할의 기대를 배반한 작은 이 할, 나는 그게 내 인생을 바꿨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내가 그런 결정을 내릴 때까지 내 몸과 마음을 길러준 팔 할, 갈수록 뼈가 닳고 눈과 귀가 어두워져가는 그 팔 할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한다. 어릴 땐 꿈이 덤프트럭 기사였고, 아는 것 적고 배운 것 없지만 ‘그게 다 식구니까 그렇지’라는 말로부터 멀리 달아나셨던 분, 그렇지만 아주 멀리 가지는 못하신 분. 내겐 한없이 다정하고 때로 타인에게 무례한, 복잡하고 결함 많고 씩씩한 여성. 그리고 그녀가 삶을 자기 것으로 가꾸는 사이 자연스레 그걸 내가 목격하게끔 만들어준 칼국수집 ‘맛나당’이 나를 키웠다, 내게 스몄다.
- 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p.14~15)
■ 문장 분석
- 김애란 단편 <칼자국>에 ‘맛나당’이라는 칼국수 가게가 나오는데요, ‘맛나당’은 작가의 어머니께서 20년 넘게 손칼국수를 판 가게라고 합니다.
- ‘맛나당’ 가게에서 8년 넘게 산 이야기 담긴 에세이입니다.
- ‘나는 우리 삶에 생존만 있는 게 아니라 사치와 허영과 아름다움이 깃드는 게 좋았다.’ 생존/ 사치/ 허영이란 단어가 눈에 띄네요.
- 어머니는 당시 번 돈을 생활비에 썼지만 가끔은 방문판매원 화장품이나 수입품 그릇, 카펫을 사기도 했다 <칼자국>에 나옵니다.
- ‘우리 가족은 재래식 화장실과 삼익피아노가 공존하는 집에 살았고 훗날 이때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칼자국」과 「도도한 생활」같은 단편을 쓸 수 있었다.’ 이런 추억들을 엮어 단편이 나왔다고 회상합니다.
- ‘그건 내가 부모에게 한 최초의 거짓말은 아니었을지라도 결정적 거짓말이었다.’ 사범대학을 안 가고 부모님 몰래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썼다고 고백합니다.
- ‘나를 키운 팔 할의 기대를 배반한 작은 이 할, 나는 그게 내 인생을 바꿨다고 생각한다.’ 나를 키운 팔 할은 ‘맛나당’(어머니)겠죠. 작은 이 할이 내 인생을 바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어릴 땐 꿈이 덤프트럭 기사였고, 아는 것 적고 배운 것 없지만(...)때로 타인에게 무례한, 복잡하고 결함 많고 씩씩한 여성.’ 어머니를 묘사하는 부분입니다.
- ‘그리고 그녀가 삶을 자기 것으로 가꾸는 사이 자연스레 그걸 내가 목격하게끔 만들어준 칼국수집 ‘맛나당’이 나를 키웠다, 내게 스몄다.’ ~~ ‘맛나당’이 나를 키웠다. 내게 스몄다라고 하네요. ‘스몄다’라는 표현을 눈여겨 봐주세요.
- 어머니에 대한 짧은 에세이를 써도 좋겠습니다.
단상) 고향을 떠난 부모님
오늘도 한없이 불러보고 싶은 어머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 할 수 있는 어머니. 어머니란 말만 들어도 무어라 표현하기가 힘들다.
무조건 자식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며, 좋은 것 있으면 자식에게 주기 위해, 꼬깃꼬깃 허리춤에 숨겨 와서 주기도 하셨다. 당신은 먹지 않고 자식에게 먼저 먹이고서 먹고, 자식에게는 좋은 옷을 입히고 자신은 싼 옷을 입고 사셨다. 윗목에서 자신은 안 춥다며 자식은 아랫목으로 밀어 보내며, 또한 가족들 뒷바라지 하느라 자신은 가꾸지 않으며, 살아온 삶이다.
어머니는 가난한 농군의 아들인 아버지께 시집을 오셨다. 부모님은 농사짓는 삶을 버리고,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산골짜기 마을에서 정선으로 이사를 했다. 아버지는 공무원이 되시고, 어머니는 가정에서 소일거리로 짐승을 키우셨다.
소, 염소가 언덕에서 풀을 뜯을 때, 우리는 칭얼거려도 꾸지람 없이 돌아서서 내일의 찬거리를 걱정하던 사람이 어머니였다. 염소, 소 키우는 걸 좋아하셨지만, 자신을 위해 돈을 막 쓰지는 않으셨다.
자식들이 성인이 되어도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맘 졸이는 사람이 어머니였다. 짐승을 판돈으로 반찬거리와 소고기국을 자식들에게 먹이는 사랑을 보여주셨다. 그보다 더 따뜻한 사랑은 없다.
탐스럽게 열린 대추열매가 겨울, 봄, 여름, 가을에 열매를 맺기 위해 고통과 아픔을 간직한 채 풍성한 열매를 맺은 대추나무가 마당에 있었다. 이젠 다시 만날 수 없는 대추나무, 도로가 생기는 이유로 고향집과 대추나무를 앞으로 볼 수 없다. 대추나무와 고향집을 버리고 원주 소초면으로 이사를 하신 부모님. 앞으로 그곳이 저희들의 고향이며, 그동안 자식들을 위해 고생하신 부모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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