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가재미 ㅡ 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 시집<그늘의 발달>(문학과 지성사, 2008)
=== 각 사람에게 세상에서 자신을 위해
사는 모습이 한 장의 사진에 담길 수 있다.
'독서이야기 > 익어가는 하루(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해 금산 - 이성복 (0) | 2020.05.12 |
---|---|
기억하는가 - 최승자 (0) | 2020.05.10 |
아직과 이미 사이 - 박노해 (0) | 2020.05.04 |
아쿠아리움 - 김이듬 (0) | 2020.05.04 |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 반칠환 (0) | 2020.05.01 |